매일신문

[기고] 웃자란 벼는 결실이 어렵다

봄이다. 활짝 피어나는 목련을 보면서 베르테르의 시를 읽을 때다. 시장에 가면 초벌 정구지단을 사가라는 투박한 시장 아주머니의 목소리에도 봄이 묻어난다. 기다림을 먹어야 튼튼한 삶을 살 수 있다. 겨우내 다독거려온 작은 풀에도 인내라는 양식이 들어 있는 것이다. 봄이 오는 소리는 땅버들과 같다. 흐르는 작은 개울물 소리를 보고도 그 가느다란 줄기에 파란 물이 드니 말이다. 버들피리를 부르라는 신호다. 삘릴리 피리리 양지바른 언덕의 진달래 꽃망울이 수줍은 보조개를 내밀 시간이다. 봄비를 맞은 대지를 뚫고 쑥, 달래냉이, 냉이, 고들빼기, 이름 모를 야생초들이 일제히 흙더미를 들고 나온다. 농부들은 풍년을 점치며 무논에 낼 모판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시나브로 새로운 시작의 향연이 흙냄새와 어우러져 펼쳐지고 있는 계절이다.

봄은 봄인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느낌이 든다. 4월 13일은 국회의원 선거일이고, 민초의 마음이 피어날 정치의 봄이기도 하다. 하지만 초겨울 들판처럼 황량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잘난 사람은 또 왜 이리 많을까? 유권자는 마술사의 관객에 불과한 것일까? 유권자는 쇼에 빠져 그 사람이 어떻게 성장했고, 시민과 국민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는 중요한 대목은 간과하고 마는 것이다. 정치인은 카멜레온처럼 얼굴이 수시로 바뀐다. 어제까지만 해도 다 죽어가는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더니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던지 만면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명색이 지도자급이라는 사람이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선량한 국민을 속여서는 안 될 것 같다. 오죽하면 공자님께서 논어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학이편'에서 배우는 사람들이 덕을 쌓기 위해 기본적으로 먼저 힘써야 될 말 중에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 말을 공교롭게 하며 낯빛을 아름답게 하는 자가 인(仁)함이 드무니라)'이라고 하였을까? 정치는 바람이라 바람잡이가 이기는 세상이고 보면 무슨 말이 귀에 들릴까마는. 그에 비하면 자연은 얼마나 정직한가. 봄 햇살이 창문을 열면 연두색으로, 여름 소나기라도 한재기 내리면 짙은 녹색으로, 가을볕이 과일의 볼을 붉히면 황금색으로 변한다. 계절에 따라 넉넉하게 자기의 얼굴을 만들어갈 뿐이다.

나라는 어려운데 망둥이만 뛰고 있으니 큰일이다. 집권당의 대표가 직인을 쥐고 잠적한 걸 취재하느라 법석인 우리 정치 현실을 보고 외국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너무 부끄럽다. 유권자는 마냥 어리석지만은 않다. 마술의 실체를 알아버리면 그리 감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옛말에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기세등등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자연을 돌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벼농사를 지어보면 인생이 보인다. 농부가 순박한 것은 자연을 가장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벼농사가 풍년이 되려면 자연적인 햇빛과 물이 공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농부의 정성이 없고서는 이루어낼 수 없다. 기초를 다지기 위해 두엄을 많이 넣어야 하고, 잡초도 뽑고 알맞은 거름도 줘야 한다. 욕심을 부려 비료를 많이 주면 새파랗게 쑥쑥 키를 뽑아 올린다. 다른 사람 논의 벼보다 키가 크다고 수확을 많이 하는 것일까? 가을이 되면 웃자란 벼는 결실이 되지 않고 쭉정이가 수두룩해진다.

우리 정치인들을 보면 웃자란 벼가 많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되기보다 부디 덕을 쌓아 웃자란 키를 줄일 수 있는 지혜를 갖추길 당부 드린다. 서민의 삶이 어려운 것은 우리가 뽑은 선량의 대부분이 부잣집 도련님이 많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자란 벼는 결실이 어렵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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