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경제학·사회학, 선거를 풀어보자
거의 해마다 이런저런 선거가 있다. 오랫동안 밭갈이를 해 온 후보들이 눈에 띄는가 하면, 어디서 왔는지 모를 새 얼굴도 많이 나타나는 게 선거판이다. 선거철이 다가오고 투표를 하지만 사람들은 늘 실망을 하기 일쑤이다. 선거철 그렇게 친절하고 상냥하던 후보자들이 단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얼굴색을 바꿔버린다. 유권자들은 늘 정치에 속는다. 그렇게 난무하던 장밋빛 공약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또다시 선거를 맞이한다. 늘 속지만 "이번만은…" 하는 심정으로. 제20대 4'13 국회의원 선거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나의 권력을 그들에게 넘겨주는 행위인 선거이기에 그 중요성이 강조된다. 특히 이번 총선의 최대 이슈 지역으로 대구가 급부상하면서 지역민들의 관심이 고조되는 상황. 이번 주 '즐거운 주말'은 총선을 앞두고 심리학, 경제학, 사회학적 관점에서 선거에 대한 궁금증들을 풀어봤다.
정욱진 기자 penchok@msnet.co.kr
◆심리학으로 본 선거
대구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떠도는 얘기가 있다. 투표장에만 들어서면 평소 생각했던 후보가 아닌 1번 난에 기표를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평소 생각했던 대로 소신껏 투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일까? 또 여론조사 결과는 유권자들의 투표 심리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까? 출구조사가 실제 투표 결과와 맞지 않는 이유는 뭘까? 사회심리학자인 영남대 허창덕 교수에게 유권자들의 투표 심리 등 선거의 심리학에 대해 물어봤다.
◆출구조사는 왜 안 맞을까?
우리나라의 선거 예측 조사는 1992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전화 여론조사에서 출구조사까지, 선거 예측 방법과 정확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지만, 항상 오차와 변수가 존재한다.
특히 사전 전화조사보다 비교적 정확하다고 알려진 출구조사도 그동안의 예를 보면 완벽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예측 조사의 정확도와 그 영향요인 연구'라는 제목으로 17대 총선을 분석한 한 국내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응답 회피나 거짓 응답 등으로 편파 분석 현상이 발생하는 점이 출구조사 오차의 한 요인으로 꼽혔다.
허 교수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에서 기인한다고 했다. 개인이 자기주장을 했을 때, 집단의 잣대로 개인을 판단하는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적 신념은 있지만 이를 굳이 드러내놓고 싶어하지 않는, 투표소 밖에 나와서는 자신의 소신을 밝히지 못하고 숨기려는 경향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나타나 출구조사의 실패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사회과학자 엘리자베스 노이만이 주장한 침묵의 나선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특정한 의견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인정되고 있을 때,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은 다수 사람들이 따돌릴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침묵하려 하는 경향이 크지요. 이런 심리학적 요인들 때문에 선거예측 결과는 완벽하게 맞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 투표장에서는 소신대로 찍지 못할까?
이 문제는 특히 대구경북 사람들에게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는 게 허 교수의 진단이다. "대구경북 사람들은 오랫동안 대한민국의 근대, 현대 정치사회에 있어서 주인의식이 강합니다. 아무리 잘못해도 자식이 아버지를 탓할 수는 없잖아요. 이런 주인의식이 투표장만 가면 자신의 소신을 꺾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한국정치의 주무대였다는 강한 프라이드를 잃지 않으려는 심리와 이를 놓쳐 정치 무대에서 소외됐을 경우 나타날 패배의식, 상실감, 소외감에 대한 공포심리가 대구경북 유권자들에게 생각과 다른 투표행위로 이어지게 한다는 얘기로 해석됐다.
허 교수는 하지만 강한 지역색이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미국 등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지역색은 뚜렷하다는 것. 그는 "우리는 흔히 영호남 대결구도로 몰아 부정적인 이미지로 편 가르기를 하는데, 이는 보편적인 심리현상이다. 이를 망국병이니, 뭔가 문제가 있는 식으로까지 보는 것은 맞이 않다"면서 "다만, 다양한 관점들을 지역사회가 수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책을 만들어 해결하면 된다"고 했다.
◆총선 투표율은 왜 낮을까?
역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을 살펴보면 제15대 63.9%, 제16대 57.2%, 제17대 60.6%, 제18대 46.1%, 제19대 54.2% 순으로 나타났다. 18대 총선 때 최저 기록을 나타낸 이후로 다시 투표율이 오르는 추세지만, 이번 20대 총선에서도 50% 초반대의 저조한 투표율이 될 것으로 정치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실제 지난 5일 마감한 재외국민 투표율이 41.4%를 기록하는 등 지난 19대 때(45.7%)보다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유권자 수는 3만 명이 늘었지만, 투표장에 온 유권자는 오히려 준 셈이다.
투표율이 이처럼 낮은 이유는 '내가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 누군가는 할 것이다'라는 의식과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될 텐데,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투표장으로 가지 못하는 것으로 허 교수는 진단했다.
특히 대통령선거 때처럼 '적'과 '아군'이 명확하게 갈리는 경우는 투표율이 높지만, 총선은 적이 안 보이는 경우가 많아 결집이 어렵다는 점도 한 가지 이유로 꼽혔다. 허 교수는 "총선은 피아(彼我)의 구분이 뚜렷하지가 않다. 내가 안 해도 판세에 큰 영향이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는 표심의 잣대?
사회심리 전문가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투표장에 가서 투표행위를 할 때 승자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당선이 유력한 사람에게 한 표를 행사하지, 안 될 사람을 찍는 것은 정치적 신념이나 후보자에 대한 밀접성이 남다른 유권자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라는 심리학적 기제가 적용된다. 지지율이 높다고 알려진 후보에게 유권자들의 관심이 쏠리는 현상으로, 우리말로는 '시류 편승 효과'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가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것이 허 교수의 지적이다. 여론조사는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실시하더라도 설문 문항, 표본의 수와 추출방법, 조사방법 등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여론조사업체가 비용을 낸 의뢰자의 구미에 맞게 얼마든지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현행 선거법에서는 여론조사의 주체와 방법, 결과를 공표할 수 있는 요건과 시기 등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빙자해서 표심을 왜곡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다.
◆외모와 음성이 투표에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의 선택에 외모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조사는 많다. 특히 정치적 지식이 부족하고 TV를 많이 시청하는 유권자에게 그렇다. 지난해 7월 미국 MIT 연구팀이 지난 2006년 미국 하원의원 선거에서 3만6천500명의 투표 행태를 표본조사한 자료를 분석해 미국 정치학회보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외모의 영향은 정치적 지식수준이 하위 25%에 속한 사람들에게서 결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TV를 많이 시청하는 사람들은 후보의 외모 점수가 10점 올라갈 때마다 지지 투표율이 4.8% 높아졌다. 중간 수준 시청자에게선 2%, 거의 시청하지 않는 사람에게선 0.8% 올라갔다. 외모가 후보의 공직 재임 기간과 같은 수준의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다. 정치적 지식수준이 중간에 속하는 50%의 유권자는 이 같은 반영률이 각각 1.3%, 1%, 0.8%인 것으로 나타났다.
음성도 중요하다. 허 교수는 "얼굴을 다 가린 상태에서 목소리만 가지고 실험을 해봤더니, 중저음 톤에 깨끗한 목소리가 유리하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상대적으로 하이톤이면서,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하는 경상도 출신이 불리하다"고 했다.
올 초 미국 듀크대와 마이애미대의 공동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나온다. 연구팀은 '오는 11월 내게 투표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여러 남녀의 목소리를 녹음했고, 녹음은 조작을 통해 저음과 고음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었다. 연구팀은 이를 남녀 재학생 각각 80여 명에게 들려주고, 어느 쪽 후보에게 투표할 것인지를 물었다. 그 결과 저음의 남녀 목소리는 고음 쪽에 비해 약 20% 더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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