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경주의 시와함께] 물방울들의 후예

박주택(1957~ )

저 유적들, 빗방울들 내는 소리를 들어보라

작고도 가냘프게 살아 있음을 증거하며

땅을 한 번씩 흔들다 사라진다, 그러나 그 물은

다시 나무들의 뿌리에 가 닿지 못하고 혀의 틈새로 사라진다

이것이 더 나은 삶을 꿈꾸었던 것이라면

중략

여기 오래 땅에 닿지 않는 발들이 모여 있다

그 발들은 푸르거나 붉어서 닿지 않음을

중략

(부분. 『시간의 동공』. 문학과지성사. 2009)

시인은 물방울들을 유적이라고 쓰고 있다. 우리는 모두 '물방울들의 후예'라고, 물방울이 되어 모두 고. 물방울의 힘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지구도 매일 견디는 것이 있다. 몸이 마르면 숨을 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몸이듯이, 지구는 먼 우주에서 바라볼 때 수많은 물방울들의 움막 같은 것이 모여 있는 곳이다. 지구엔 아침에 물방울 속으로 들어간 이슬을 쪼는 새도 있고, 저녁이 되면 문득 잊고 살던 물방울에서 생겨난 마음으로 거리를 걸어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 사람의 뿌리까지 뻗어 있는 물방울을 꿈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헛것이라고 부르기도 하겠으나 당신의 입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물방울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 시인이라면 힘껏 그 물방울을 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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