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공약(空約)

어제 치러진 총선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자들이 내건 공약을 이행하는데 1천조원이 넘는 예산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20대 총선 후보자들에게 '5대 핵심 공약과 소요 예산 내역'이 담긴 공약 예산표를 제출받아 분석했더니 이런 결과를 얻었다.

올해 우리나라의 정부 예산은 386조4천억원이었다. 1천조원이라면 나라 예산의 3배에 가까운 돈이다. 국회의원들이 내건 공약을 지키려면 다른 아무것도 안 하고 공약을 지키는 데만 내리 3년 예산을 쏟아부어야 한다. 모든 예산을 공약사업에만 쓸 수 없으니 임기 4년의 국회의원들이 재임 기간 공약을 다 이행하기는 애초부터 글렀다.

그렇다고 빚을 내어 공약을 지킬 수는 더욱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 채무는 590조원에 이른다. 공약을 지키려면 지금까지 누적된 국가 채무의 두 배에 가까운 빚을 또 내야 한다. 그 빚은 후손들이 고스란히 짊어져야 한다.

공약(公約)은 선거 운동을 할 때, 정당이나 입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제시하는 '공적인 약속'이다. 이 약속엔 당선 후에 실천하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문제는 이번 총선 기간 중에 각 당이나 후보자들이 내건 공약에서 실천 의지를 읽기 힘들다는 점이다. 공약은 처음부터 빌 공(空)자 공약(空約)이었다.

유권자를 속여 표를 얻기 가장 좋은 것이 복지 정책이다. 이번에도 각 당은 어김없이 복지 증대를 들고 나왔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월 10만~2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인상하겠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복지 공약을 실천하는데 새누리당은 56조원, 더불어민주당은 148조원, 국민의당은 46조원이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공약들은 실천하면 나라 살림이 거덜나고, 실천하지 않으면 헛 약속이 된다. 결국 국민으로서는 실천해도 걱정이고 안 해도 걱정이다. 여야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니 유권자들은 선택권을 잃었다.

국회의원 선거는 4년마다 돌아온다. 내년이면 또 대통령 선거다. 유권자들에게 무엇을 해주겠다는 공약은 실제론 세금 폭탄, 빚 폭탄을 안기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음 선거에서는 헛된 약속보다는 나라 살림을 어떻게 아껴서 필요한 곳에 돌리고 후손들의 부담도 덜겠다는 공약이 나오기를 바란다. 이제 유권자들이 빈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보다는 공약다운 공약을 거는 그런 후보를 뽑을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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