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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의 생각] 폐지 줍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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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인이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지나간다. 머리와 무릎이 포개지듯 굽은 허리, 꺾인 허리만큼 노인의 존엄도 낮아 보인다. 노인의 물리적 키는 1m도 채 되지 않는 듯했다. 저런 골격으로 어떻게 보행이 가능할까. 어지럽게 돌아가는 수레바퀴와 손잡이 사이에서 위태로운 보행은 노인이 고물상으로 들어가면서 일단락됐다.

고물상에 수레를 맡긴 노인은 종업원이 건네준 커피를 받아 들었다. 노인은 저 '단물'로 노곤한 일상의 피로를 풀고 있는지 모른다.

매일 아침 내 출근길에서 접하는 풍경이다. 서문시장 근처의 한 고물상, 이곳엔 20여 분의 노인이 매일 고물과 폐지를 실어 나른다. 이 중 절반은 자신의 점포나 주변에서 생기는 부산물을 실어 나르는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이른바 '전업' 어르신들이다.

이들은 하루 1, 2번 서문시장, 반월당 주변 골목을 돌며 박스를 실어 나른다. 고가의 전선이나 신주(황동)라도 줍는 날엔 1만원까지 받아가지만 보통 이들의 손엔 3천~4천원의 현금이 쥐여진다. 이렇게 노인들은 고물상에서 한 달에 30만~50만원을 번다.

재활용품점 종업원은 "매출을 떠나 어르신들이 몇 푼을 위해 하루 종일 골목을 다니는데 이들에게 이윤을 남기는 것도 송구스럽다"고 말한다.

이렇게 전국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은 약 170만 명. 대구에도 1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한창 폐지 가격이 좋을 때는 ㎏당 170원 정도 했다. 100㎏ 한 차만 싣고 와도 1만5천원을 가져갔으니 한 달 생활비, 용돈, 약값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던 폐지 값이 5년 만에 반 토막 났다. 여기에 국제 유가 하락, 중국 원자재 파동으로 플라스틱, 고철류도 몇 년 새 반값 이하로 떨어졌다.

이런 재활용품 시장의 몰락은 노인들에게 직격탄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한 달에 100만원씩 벌던 분들이 40만~50만원으로 떨어지면서 이들은 도시 빈민으로 추락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단지 물가나 시장의 혼돈 때문에 생긴 일일까. 최근 이런 현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한 '사건'이 있었다. 얼마 전 공정위에서 제지업체들에 1천184억원의 과징금을 내렸다. 업체 12곳에 '9년 동안 9차례에 걸쳐 가격 담합'을 한 징벌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우연인지 이 기간 제지업체들은 '눈부신' 성장을 했다.

이들은 폐지 가격 결정에도 개입했다. 보도에 의하면 이들은 수시로 담합을 통해 폐지 가격을 낮췄다고 한다. 고물상과 업체 간 합의, 조정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폐지 단가가 업체들의 일방적인 '고시'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이들의 담합에 의해 폐지값이 떨어질 때마다 1만7천여 영세 고물상들은 벼랑 끝으로 몰렸고 골판지주(株)가 상한가를 칠 때마다 노인들은 '하한(下限)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어야 할 요즘 경제 현실에서 사회적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헌 종이'처럼 구겨 버린 업체들의 비양심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렇게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 행해지는 자본의 논리와 먹이사슬의 모순을 깨는 일, 새로 뽑힌 선량들이 짊어져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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