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바둑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미디어 앞으로 모이게 한 큰 사건이 있었다. 바로 세기의 대결이라고 불린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국이었다.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의 CEO인 허사비스는 "바둑은 지난 수백 년간 인류만이 다룰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말했고, 그 상대인 이세돌 9단은 "바둑의 낭만과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켜내겠다"며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대결은 알파고의 4대 1 승리로 끝나버렸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인공지능의 역할이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산업혁명을 이끌었듯이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영화 속 이야기처럼 인공지능과 로봇이 미래의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본주의 중세시대가 종식되고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했다. 르네상스는 예술의 복고와 재생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이는 인간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리스'로마 사상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근본정신은 휴머니즘이다. 그리고 휴머니즘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예술분야에서 일어났고 수많은 명작을 남기는 계기가 되었다. 이 휴머니즘은 비단 르네상스 시대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정치, 경제, 예술 분야에서도 중요한 화두이다. 정치와 경제는 사람을 위한 것이고 예술 분야도 당연히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인류는 이미 '호모사피엔스'가 아니다. 인간은 다리 근육의 한계를 넘어서는 자동차와 기차를 만들었고, 뇌가 필요한 연산과 기억은 컴퓨터나 휴대전화가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금은 인간이 기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곧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는 시대가 더 깊이 다가올 것이다. 이를 '포스트 휴먼 사회'라 부르는데 인간의 능력과 생활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적으로 기술의 개발을 용인하는 것을 '포스트 휴머니즘'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휴머니즘의 위기가 보인다. 예를 들어 불의의 사고나 선천적으로 다리가 없는 사람을 위해 특수한 의족을 달아 100m를 10초대에 주파할 수 있게 해준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지만 육상선수가 자기의 기록 단축을 위해 그 다리를 자르고 의족을 한다면 이것을 과연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말이다. 물론 요즘은 윤리적인 것을 보완한 단어인 '트랜스 휴머니즘'이라는 말을 쓰고는 있지만 이 또한 어떻게 변질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휴머니즘의 해체가 두렵게 다가온다.
아직까지는 살아 숨 쉬는 휴머니즘만이 이것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문화예술의 올바른 나눔만이 휴머니즘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대기업의 카피 문구처럼 '사람이 미래'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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