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공짜 점심은 없다

스웨덴은 여러 면에서 닮았으면 하는 나라다. IMF 기준 올해 1인당 GDP는 5만1천달러로 세계 10위에 올라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소득의 두 배쯤 된다. 10여 년 전 프랑스에 최고 자리를 내줬지만 여전히 세계 최상위 복지국가에 이름을 올려두고 있다.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를 실현한다. 반세기가 넘도록 아낌없이 복지를 실현하면서도 국가 채무는 2013년 기준 GDP의 43.6%에 불과하다.

부의 배분에 있어서도 스웨덴은 더없이 모범적이다. 스웨덴의 가처분소득 대비 지니계수는 0.24로 세계 최저다.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한 사람이 모든 소득을 독점하면 1이 되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눠가지면 0이 된다. 1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가 불평등해지고 0에 가까워질수록 소득 분배가 잘 이뤄지는 셈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0.34로 OECD 국가 중 다섯 번째로 높았다.

그렇다고 공짜 점심은 없다. 고복지를 누리기 위해 국민들은 그만큼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스웨덴의 조세 부담률은 51%로 세계 최고다. 5만달러를 벌어 절반 이상을 떼 세금으로 낸다. 그래도 누구하나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세금 부담을 감내하는데는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시련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스웨덴 역시 1990년대 초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았다. 지나친 복지 탓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당시 스웨덴의 1인당 GDP는 2만9천794달러, 국가채무비율은 46.3%로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민소득 2만7천달러, 국가채무비율 37.3%와 비슷하던 시기다.

복지비 지출로 재정수지 적자가 이어졌다. 당시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경기 침체로 재정수지 적자를 경험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스웨덴은 유독 심했다. 재정수지 적자 폭은 다른 유로국가들의 2배에 달했다. GDP는 역성장해 1993년에는 -11.2%까지 떨어졌다. 국가채무는 급격히 늘었다. 1991년 GDP 대비 55%던 국가채무는 불과 3년 만인 1994년 82.5%로 치솟았다.

스웨덴 정부는 위기를 절감했다. 빚을 내서라도 고복지를 유지하느냐, 과감한 구조조정에 나서느냐가 문제였다. 스웨덴 정부는 후자를 선택했다. 전자는 후손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국가채무를 늘리기보다 과감한 구조조정을 선택했다. 정부 총지출을 대폭 줄이고 국민 조세 부담은 늘렸다. 정부 지출 감소엔 사회복지 지출 감소가 핵심이었다. 1992년 34.7%에 달했던 GDP 대비 복지비 비율은 2012년 28.4%까지 낮아졌다. 국가채무비율도 82.5%서 43.6%로 떨어졌다.

이 같은 구조조정은 정권 교체에 아랑곳없이 일관되게 추진됐다. 1990년대 이후 정권은 보수연합 정부서 사민당 정부로, 다시 보수당 정부로 이어졌지만 복지개혁은 이어졌다. 정부마다 '빚진 자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전제를 거울삼았다. 같은 기간 개혁 대신 국채 발행을 택해 국가채무비율이 246%로 폭증, 휘청대는 일본과 대비된다. 독립기관인 스웨덴 재정정책위원회는 이제 스웨덴 재정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상태에 있다고 자신한다.

우리나라의 빚은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갚아야 할 빚은 590조5천억원으로 GDP 대비 37.9%다. 이 수치를 근거로 정부는 아직 괜찮다고 한다. OECD 국가채무 평균 115.2%보다 한참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괜찮지 않다. 우리나라는 아직 스웨덴 같은 복지 체계를 경험하지도 못했다. 조세 부담률도 한참 모자란다. 정부가 마련한 장기 재정 전망에 따르면 2060년 국가채무비율은 62.4%로 전망된다. 저성장 추세가 이어지면 94.6%에 이를 수도 있다. 국민연금은 2060년이면 바닥나고 건강보험은 2025년이면 고갈된다.

지금 한국 경제는 20년 전 스웨덴을 닮았다. 한시가 급하다. 이제라도 구조조정을 잘해야 지금의 스웨덴처럼 될 수 있다. 여기에 여야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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