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셰비키 정권 초기 스탈린의 별명은 '서류함 정리 동지'였다. 여기에는 우둔한 관료적 인간형이란 경멸적 의미가 담겨 있다. 레닌이 1917년 10월 12명의 인민위원을 추천하면서 스탈린을 맨 끝 순위로 끼워준 것은 바로 이런 이미지 때문이었다. 레닌은 스탈린을 포함시킨 이유를 설명하면서 "지성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에게 배정된 자리는 창의적 지성이 불필요하다는 뜻이다.
다른 볼셰비키들도 레닌과 같은 생각이었다. 스탈린의 최대 정적으로, 화려한 언변과 빛나는 지성을 자랑했던 트로츠키는 "눈에 띄게 평범한 인물"이라고 '개무시'했다. 그러나 이는 스탈린을 한참 잘못 본 것이다. 말수가 적고 언변이 어눌한 겉모습에 속은 것이다. 스탈린의 목소리는 억양 없이 단조로웠으며 연설 솜씨도 형편없었다. 회의에서는 조용히 앉아 다른 사람의 말을 듣기만 했고, 그들의 의견에 찬반을 표시해야 할 때는 이유에 대한 설명 없이 그저 조용히 손을 들거나 들지 않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런 겉모습 뒤에는 신중하며 빈틈없이 조직된 지성이 있었다. 그 바탕은 독서였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양한 책을 읽었다. 1930년대에 그의 장서는 무려 4만 권이나 됐다. 독서 방식도 매우 치밀했다. 의문 나는 대목에는 질문과 논평을 적고 밑줄을 그으면서 비판적으로 읽었다. 이는 젊은 혁명가 시절부터 몸에 밴 것이었다. 그에게 숙청당한 카메네프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제정 시절 시베리아 유형 중에도 마키아벨리의 책을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스탈린의 이런 숨겨진 면모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매우 신중해야 함을 일깨워준다. 그런 점에서 26일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국민의당 워크숍에서 안철수 공동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양적완화가 뭔지 모르는 것 같은데요. 하하하 아유 참"이라고 비하한 것은 경박한 처신이다.
양적완화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 일본이 시행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다. 낯설지만 언론에 자주 보도됐기 때문에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도 어떤 정책인지 대충은 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모르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실례다. 비판을 해도 격이 있어야 한다. 그런 식의 비아냥은 그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격을 떨어뜨린다. 물론 안 대표의 발언이 공식 석상이 아니라 박지원 의원에게 농반진반으로 했다가 기자에게 포착된 것이라지만, 어쨌든 그의 됨됨이를 엿보게 한다. 바로 오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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