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권에 왜 신공항을 지어요."
몇 년 전 일인데도 너무 '충격적'이어서 기억이 뚜렷하다. 이번 4'13 총선에 출마한 정치인과 함께한 자리였다. 신공항 이야기를 꺼내자 돌아온 답이다. 대구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서울에서 생활해 온 그는 당시에도 유력 인사였다. 대구와 부산이 물어뜯고 싸우는 영남권 최대의 현안이었지만 그는 처음 들어본다는 반응이었다.
'어, 촌놈끼리만 싸우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대구에서 총선 출마를 생각하는 분이 영남권 신공항을 모른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이분의 당선 여부는 묻어 두겠다.
얼마 전 총선이 끝났다. 한동안 새누리당 텃밭이었던 대구는 야당 출신과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을 낳았다. 선거 당시 민심이 요동치자 새누리당 대구 후보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무릎을 꿇었고 대구 발전을 위한 5대 공약을 발표했다. ▷국내 10대 대기업 유치 ▷대구 구간 KTX 고속철도 지하화 ▷청년 벤처창업밸리 조성 ▷대구 취수원 낙동강 상류 이전 ▷K2 공군기지 및 50사단 이전 등이다.
뒤의 세 가지 공약은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면 해결의 가능성이 있는 공약들이다.
문제는 앞의 두 가지 공약이다. 우선 국내 대기업 유치를 따져보자. 지방자치가 시작된 1995년 이후 대구시와 정치권은 '대기업 유치'를 절대 과제로 내걸고 노력했다. 전통 산업인 섬유와 건설업의 붕괴로 일자리가 줄고 지역 경제력이 쇠약해진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대기업의 러브콜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우수 인재가 필요한 첨단 산업은 구미 등 지방에 있던 회사를 빼내 수도권으로 옮겨갔고 가뜩이나 신규 투자를 하지 않는 국내 제조업은 산업단지도 없고 땅값도 비싼 대구에 터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대기업 유치는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을 공유하게 됐다.
이렇게 어려운 과제를 새누리당 후보들은 과감하게 꺼내들었다. 공약대로 10대 대기업이 대구에 오면 허약한 대구 경제로서는 '단비'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실천 여부다. 어떻게 누가, 무슨 방식으로 대기업을 유치할 것인지에 대한 미시적인 방법론은 아직 없다. 물론 20대 국회가 개원한 뒤 열심히 노력한다는 전제로 낸 공약일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오랜 생활을 한 분들이 많아 지방, 대구의 현실을 제대로 모르고 낸 공약이 아닐까 하는 노파심도 있다. 대기업 유치는 의원 한두 명의 노력으로 쉽게 되지 않는 부분이다. 적어도 대구 의원들이 '팀'을 만들고 임기 내내 힘을 모아야 어느 정도라도 '희망'이 보이는 부분이다.
고속철도 지하화도 의구심이 드는 공약이다. 지난 2000년 16대 국회가 개원한 뒤 대구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대구 도심을 통과하는 고속철도 지하화였다. 지역 여론도 팽팽하게 갈려 몇 년을 지루한 공방을 벌였다. 결국 대구시는 2004년 11월, 고속철 주변의 대대적인 정비 사업 등을 포함해 1조3천억원을 중앙정부가 투자하는 조건으로 지상화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공사는 최근 마무리됐다. 지상화 대가로 고속철 주변 시민들이 보상을 받았고 공원이 생겼고 고가차도와 지하차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과감하게도 고속철도 지하화 공약을 다시 들고 나왔다. 대략 예산이 3조원 필요하고 대구가 지하화를 하면 같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은 대전도 지하화를 요구할 것이 뻔하다. 다시 5조원이 넘는 돈을 중앙정부는 지출해야 한다. 누가 봐도 새누리당 시당 차원의 공약이 아니라 '대선급 공약'이다.
선거는 끝났고 이제 당선자들에겐 임기 동안 제시한 공약 실천이란 과제가 남아 있다. 유권자들도 이들이 공약 실천에 매진하면 결과를 떠나 박수를 보낼 것이라 확신한다. 공약에 책임을 지는 20대 국회의원들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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