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하려고 교도소에 갈 때마다 내가 수용자가 됐다는 느낌으로 갔어요. 3년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용자들보다 내가 더 변화해 있더군요."
2013년부터 작년까지 서울 남부교도소에서 60회 인문학 강의를 이끈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1일 "강의를 한 교수들이 더 느낀 것이 많다"며 "스스로 변하려는 마음가짐을 얻었다"고 전했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2013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연천 당시 서울대 총장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교도소 재소자를 위한 인문학 교육을 시작하기로 협약했다. 그달부터 인문대를 중심으로 기수당 서울대 교수 10명이 6기까지 총 60회 강연을 했다.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하는 강연에서는 철학, 종교학, 역사학뿐 아니라 독일, 인도, 라틴아메리카, 고대 그리스 등 각 나라의 문학과 문화가 소개됐다.
재소자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40명이 듣는 강의에 100명이 넘는 인원이 몰려 2∼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고 한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자 녹화본이 전국 교도소에 방영됐다. 법무부는 프로그램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배 교수는 "수강자 중 살인자, 성폭행범부터 전 장관, 대학 총장 등 사회 저명인사까지 면면이 다양했다"며 "일회성이 아니라 긴 호흡으로 이어나가는 프로그램이어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수강자들이 더 열광했던 것 같다"고 반추했다.
강의는 재소자들뿐 아니라 교수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배 교수는 "서울대에서 강의하면 휴대전화를 보느라 강의에 집중하지 않는 학생이 태반인데,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재소자들은 절박하게 강의에 집중하더라"며 "새로운 시작이나 창의는 절박성에서 온다는 것을 거듭 느꼈다"고 말했다.
강의를 듣고 난 재소자들은 총평이나 눈물 섞인 편지로 교수들에게 화답했다.
수십 통의 감사 편지를 받았다는 배 교수가 3년간 강의를 진행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살인죄로 오랫동안 복역한 사람의 에세이였다.
강의를 끝마치면서 10번째 책을 읽고 에세이 발표를 시켰는데, 그동안 가족도 만나지 않고 홀로 지내던 수감자가 고해성사를 시작했다.
'이제야 아내와 자식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있게 됐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가 그동안 부족해 용서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내용이었다. 강의실은 일제히 숙연해졌다.
배 교수는 "이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그들이 틀렸다는 교정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하고, 그에게 스스로 자신을 보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었다"며 "수용자 자신의 현재 모습과 자신이 지향하는 미래 모습을 구별해 주려고 노력한 것이 결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되돌아봤다.
인문학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강의 내용을 담은 책 '낮은 인문학'이 4월 말 출간돼 독자를 만나고 있다.
배 교수는 "정부 도움이나 지원이 없고 서울대 자체 예산으로 운영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며 "작년 강의를 끝으로 마무리하고 이 내용을 담아 책으로 출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책 가장 첫머리에는 배 교수가 강의에서 설명한 '마아트'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마아트는 이집트 문명에서 설명하는 우주의 균형이자 원칙으로, 개인 삶에서 반드시 이뤄야 하는 '최선'을 뜻하기도 한다.
배 교수는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중심이 되는 마아트가 없으면 1.5t짜리 돌 300만개가 쓰러지고 만다"며 "마아트를 알았기 때문에 피라미드가 4천600만년 동안 서 있는 것처럼 우리 삶에서도 마아트를 알고 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요즘 인문학 서적 트렌드가 너무 힐링에만 경도돼 있어요. 문제는 '나'에게 있는 만큼 힐링이 아니라 나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편견과 무지라는 교도소에서 탈출하려면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골방'이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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