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는 내가 쓴 책이다. 이 책은 내 아이가 세 살 때 아내가 외국으로 공부를 하러 갔을 때 쓴 것이다. 나는 철학자들이 쓴 어려운 책을 읽을 때보다 아이를 직접 기를 때 철학적 주제인 시간, 언어, 존재, 자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때 깨닫고 느낀 점을 쓴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을 내고 난 후 독자들이 쓴 리뷰를 보니 '이 책이 정말 육아서냐', '우리 어머니들이 이런 철학을 알아서 육아를 잘했던 건 아니다'는 식의 반응이 꽤 많이 있었다. 심지어 '육아서를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썼고, 인문학이 유행하는 시류에 편승한 것 같다'는 평도 있었다. 억울한 점도 있었지만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나는 육아서를 쓰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아이를 키우는 일'을 '나'의 관점에서 기록하고 싶었다.
지금 이 책은 서점의 '육아 코너'에서 판매된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 추천도서로 선정될 때는 철학 분야로 뽑혔다. 출판사도 출간 전 책을 분류하기 위한 고유 번호를 신청하려 할 때 이 책이 철학서인지 육아서인지를 두고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철학책도, 육아책도 아니라는 점에서 이 책은 지금까지도 '분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밥벌이로 다른 일을 하면서 철학연구자, 육아책 작가, 간혹 미술사를 강의하는 사람 중 어느 것으로 잘 분류되지 않은 채 분열되고 있는 나처럼 말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뉴욕에서 탄 택시 좌석 앞에 어떤 배우의 프로필이 붙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뭐냐고 기사에게 물었더니, 택시기사는 자신이라고 답했다. 택시기사는 '리어왕'을 연기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택시기사이면서 동시에 연극배우였다. 그는 직종 분류에 따른 어떤 하나의 직업으로 결코 분류되거나 표상되지 않는다.
세상에 말끔하게 분류되지 않는 것이 이렇게나 많은 것을 보면, 분류되지 않는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온갖 분류체계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억지로라도 이것과 저것을 분류하려는 이유는 분류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만약 어떤 것이 자기 기준과 틀에 따라 분류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하고 괴물이나 유령, 마녀로 규정하고 추방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직업, 피부색, 성별, 계급, 학력으로 간단히 분류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 조금과 저것 조금이 섞인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는 힘센 자들의 이분법적인 분류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저항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리어왕처럼 힘센 자들에게 묻자.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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