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新여자·모던걸·무산 여성, 같은 신여성 아니다

신여성, 개념과 역사/김경일 지음/푸른역사 펴냄

한국 근대사 속 '신여성'의 좌표를 살펴보는 책이다. 신여성의 개념과 실체를 살펴보는 동시에 신여자, 모던걸, 무산 부인, 노동 부인, 현대 여성과 같은 다양한 표현들이 지니는 의미를 파악한다.

이 책에서 초점이 되는 여성들은 분야별로, 시대별로 한정된 소수의 여성들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신여성은 동시대의 단일한 실체라기보다 세대와 이념, 각각의 입장이 다른 복합적인 구성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약 70년에 걸쳐 등장했던 여성들을 다루며, 특히 1900년대부터 1920년대에 이르는 시기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1890년대 이후 등장하기 시작한 제1세대 신여성들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일본이나 미국에서 근대 교육을 받고 귀국한 인물들로, 하란사와 박애스더, 차미리사, 윤정원을 들 수 있다.

1920년대에 등장한 제2세대 근대 여성은 봉건 가족제도와 결혼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도전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친 개조와 개혁을 이루려고 했다.

이 시기 신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정도의 여성 권리를 향상시키려는 입장이 아니라 남성 지배에 대한 분노와 비판을 바탕으로 남녀의 평등을 요구했다. 즉 1세대 신여성들이 남성이 누리던 권리 영역을 그대로 인정한 상태에서 여성의 지위를 남성의 지위와 동등하게 끌어올리려고 했다면, 이들은 여성의 열악한 지위가 남성의 지배와 연관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가부장적 남성 권력에 도전하려고 했다.

'모던걸'은 '신여성'이라는 표현에 이어 출현한 새로운 개념이다. 한국에서만 등장했던 것은 아니며,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20세기 전반 중국 베이징, 인도 뭄바이, 서울과 도쿄, 베를린, 뉴욕 등에서도 '모던걸'이 나타났다.

모던걸의 특징은 특정 상품의 사용과 노골적인 에로티시즘이었다. 앞선 '신여성'들이 흔히 정치적 행동주의와 연결된다면, '모던걸'은 소비와 연관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회주의 여성'은 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며, 자유로운 성과 성 해방을 실천했지만, 나혜석으로 대표되는 신여성과 달리 성에 대한 쟁점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았다. 그래서 사회로부터 직접적인 비난이나 악의에 찬 비방에서는 다소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신여성과 같은 부류로 인식됐지만, 자신들은 스스로를 무산 여성이나 노동 부인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정칠성은 "진정한 신여성은 강렬한 계급의식을 가진 무산 여성"이라는 말로 계급적 시각에서 신여성을 정의했다.

'제3세대 근대 여성'은 신여성 중에서도 세속화된 여성들이라고 할 수 있다. 주로 1930년대 중반 이후 등장했으며, 앞선 신여성들이 가부장적 질서에 대항하며 자신을 희생하고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면, 이들은 기성사회에 대한 도전을 포기하고, 근대 교육이 자신들에게 부여한 특권을 개인적 차원에서 향유하고자 했다. 따라서 이들의 행태는 낭비와 사치, 허영의 상징으로 비판받았다. 그러나 이 부류에 속하는 여성은 전체 여성을 놓고 보면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다.

책은 전체적으로 3개 범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근대 여성의 유형, 2장은 1900년대 활동한 제1세대 근대 여성, 3장과 4장은 1920년대 제2세대 근대 여성, 5장은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과 계급투쟁, 6장은 성과 사랑에 대한 사회주의 여성의 의견과 주장을 담고 있다. 336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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