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처음 이름을 알린 영화는 '황야의 무법자'(1964년)였다. 그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굵은 시가를 꼬나물고 등장해 마구잡이로 총질을 했다. 만화 같은 스타일의 이탈리아 서부영화인 '마카로니 웨스턴' '스파게티 웨스턴'의 시작이었다. 흥행 성공에 힘입어 '석양의 무법자' '속 석양의 무법자'에 잇따라 출연했지만, 이류 배우 딱지를 떼지 못했다. 요즘으로 보면 스티븐 시걸, 장 클로드 반담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까.
그가 스타 대열에 합류한 것은 '더티 해리'(1971년)에 출연하고부터다. 이 영화도 저예산 B급 영화였지만, 그가 '해리 캘러헌'이란 슈퍼 경찰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대성공을 거뒀다. 영화 속의 해리 형사는 범죄자를 보면 인정사정없이 쫓아가 기어코 처단하는 냉정한 집행자였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코끼리도 쏘아 죽인다는, 큼직한 44매그넘 권총이었다. 상관이나 정치인 등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큼직한 권총을 휘두르며 범죄자를 소탕하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전율과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영화 마지막에 스쿨버스를 납치한 범죄자가 쓰러지면서 총을 들자, 해리 형사는 44매그넘 권총을 그의 머리에 겨누며 유명한 대사를 내뱉었다. "어서 쏴 봐. 그래서 나를 즐겁게 해줘." '경찰 영화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이 영화는 5편이 만들어졌고, 한국에는 두 번째 시리즈인 '이것이 법이다'(1973년)가 개봉됐다.
이 영화가 성공한 배경에는 당시 미국의 사회경제적 상황이 맞물려 있다. 1960년대부터 인구가 대도시로 집중하면서 범죄율이 급속하게 치솟았고 강력 사건이 빈발했다.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회에 불안을 느낀 시민들이 영화 속 슈퍼 경찰에 폭발적인 환호를 보낸 것이다.
10일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된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다바오 시장의 별명은 '더티 해리'다. 그는 22년간의 시장 재임 기간에 자경단을 조직해 1천여 명의 범죄자를 처형했고, 3명의 성폭력범을 직접 권총으로 사살한 것으로 알려진 극단적인 정치인이다. 대선 유세에서도 "바다를 범죄자의 피로 물들이겠다" "범죄자의 시체를 빨랫줄에 널어버리겠다"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서슴지 않았다. '더티 해리'가 더는 영화 속의 캐릭터가 아니라, 실존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인권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범죄가 판을 치는 필리핀에서 그의 새로운 실험이 통할지 지켜보는 것이 너무나 흥미롭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