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묻지마 살이' 부른 무의식 속 여성 혐오증

지난 17일 서울 강남역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23세 여성이 생면부지 남성의 흉기에 찔려 숨진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 범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살인이 여성혐오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분석은 피의자 김모(34) 씨의 진술을 토대로 한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여자들에게 항상 무시당했다"고 말했다.

발언 내용이 알려지자 '묻지 마 살인'을 부른 여성혐오 세태를 질타하는 지적이 쏟아졌다. 온라인에서 촉발된 피해자 추모와 여성혐오 비판은 오프라인까지 번져 강남역 10번 출구 벽면에 추모 쪽지가 가득 붙고 국화꽃이 쌓였다.

그런데도 사건 원인을 두고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혐오가 범죄 원인일 것이라는 세인들의 인식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직접적인 혐오 범죄로 볼 순 없지만, 무의식에 각인된 혐오로 인한 범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사회불만을 여성에게 표출하는 성격도 있다. 성차별 사회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에 의해 죽을 수 있다는 불안이 젊은 층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설명도 했다. 심각해지는 여성혐오 실태를 바라보는 문제의식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표출됐다는 의견도 많다. 실제로 최근 10여 년 동안 인터넷 커뮤니티 등 온라인에서는 '된장녀' '김치녀' '김여사' '맘충' 등 여성 비하 단어와 혐오감을 담은 글이 넘쳤다. 이나영 교수는 이어 "성차별적인 사회구조 문제를 이번 사건을 통해 깨닫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건을 단순한 '묻지 마' 범행에서 더 나아가 여성혐오 범죄로 보기는 다소 조심스럽다는 시각도 적잖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조현병(정신분열증)으로 4차례 입원한 피의자 전력을 보면 의사 결정 능력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여성혐오 범죄라기보다는 그냥 묻지 마 범죄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정신 상태가 온전치 않은 피의자 진술은 신빙성이 낮다"면서 "망상에 의한 근거 없는 피해의식이나 환청 등을 토대로 진술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여성혐오로 인한 분노가 범죄 원인인지는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사건 원인과 별개로 강력범죄 피해자 80%가량이 여성인 만큼 이번 기회에 사회 시스템을 크게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한목소리를 냈다.

이수정 교수는 "정신병력이 있는 범죄자는 치료를 강제하는 형사정책을 강화해야 하고 영업 기준도 정비해 남녀공용 화장실 등 범죄 취약 시설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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