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이란 방문 정상외교 성과
역사적 가치보다 금전적 가치로 평가
국정의 의미 뭉개는 데 앞장선 청와대
외교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선 안 돼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중국 본토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후 처음 터진 정치적 물꼬였다. 미국은 당시 중공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전략을 견지해오던 터였다. 닉슨-마오쩌둥 정상회담은 미국이 중국을 둘러싼 '죽의 장막'을 공식적으로 걷어낸 이벤트였다. 국제사회에 복귀한 중국의 거침없는 행보는 익히 아는 대로다. 닉슨 대통령의 정상외교는 중국이 오늘날 G2 반열에 오르게 된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그런 극적인 장면이 있다. 대표적인 게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외교와 관련된 정상회담이다. 노 대통령은 1990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당시 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첫 한소 정상회담을 가졌다. 오랜 냉전시대의 얼음을 깨뜨리는 신호탄이었다. 1992년 9월 중국을 방문한 노 대통령이 양상쿤 국가주석, 장쩌민 총서기, 리펑 총리 등과 회담을 가진 것도 마찬가지이다. 미국과 일본에 의존하던 공산권 외교의 한계를 탈피하는 시도이자 오늘과 같은 한중, 한러 관계의 초석을 놓는 대장정의 시작이었다.
이처럼 대통령의 정상외교는 대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시대의 물줄기를 바꾸는 세계사적 사건이 된 정상회담도 흔하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이를 금전적 가치로 평가하려는 이상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가 앞장서 몇백 건의 양해각서가 체결되고 몇십조원의 성과가 있었다는 등 홍보에 열을 올린다.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하는 김에 기업인을 대동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기업인의 경우 대통령 방문행사를 통해 평소 만나기 어려운 고위급 관료들과 안면을 틀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제적 성과는 부차적이다. 외교, 특히 정상외교에 있어 역사적 전략적, 국제정치적 의미와 성과가 훨씬 더 큰 것이다.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방문도 마찬가지다. 오랜 세월 이어진 서방의 경제 제재가 해제된 이란 시장은 충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이란 정상외교의 첫 번째 고려는 경제적 가치가 아니다. 테헤란로로 상징되는 오랜 우호관계의 복원이나 북핵 억제를 위한 국제공조의 확산 그리고 잠재력이 큰 이란 시장의 선점 등 전략적 의미를 갖는 성과를 거두었다.
문제는 이런 중요한 의미를 뭉개는데 청와대가 앞장선 것이다. '52조원 혹은 42조원' 성과라고 돈을 앞세우면서 '뻥튀기' 운운하는 저급한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양해각서까지 실제 성과인 양 부풀렸다, 돈을 벌기는커녕 우리가 써야 할 돈이 많다는 식의 논쟁이 달아올랐다. 정작 역사적 의미를 갖는 이란 방문의 성과에 대한 평가는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장사꾼' 이미지를 앞세워 국정도 장사처럼 생각한 대통령 탓인가. 아니면 모든 성과를 돈으로 환산하려는 우리의 생각이 문제인가. 어쨌든 국정 운영은 당장 금전적 이익을 영수증으로 남겨야 하는 기업 운영과는 다르다. 정상외교는 반드시 얼마의 돈으로 환산되어야 할 거래도 아니다. 공산권 국가인 구 소련이나 중국 정상과의 만남이 당장 무슨 금전적 이익을 가져다 주었나. 하지만 당시 정상외교를 통한 관계 정상화가 없었다면 지금 어땠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는 아프리카와 프랑스 등을 도는 정상외교에 나섰다. 이번에도 또 몇 건의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몇십조짜리 성과를 거뒀다고 청와대가 설레발을 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오래전부터 아프리카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며 공을 들이고 있다.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 등이 이미 순방을 마친 것을 보아도 아프리카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대통령의 방문은 늦은 감마저 있다 이번에는 그런 전략적, 역사적인 맥락을 제쳐 놓은 채 돈으로 환산된 성과 운운하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 국정이라는 높은 가치를 저질의 논쟁으로 이끌지 않는 '정상적' 안목 정도는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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