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동체 회복의 디딤돌 '할매할배의 날']<3>핵가족화에 맞는 할매할배의 역할

할매할배 품에서 크면 인성도 자라죠

할매할배의 손자 손녀 양육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지난해 10월 22일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의성 사촌마을의 서원을 찾아가 7살 어린이들에게 미술을 지도했다. 경북도 제공
할매할배의 손자 손녀 양육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지난해 10월 22일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의성 사촌마을의 서원을 찾아가 7살 어린이들에게 미술을 지도했다. 경북도 제공
2014년 10월 25일
2014년 10월 25일 '할매할배의 날' 선포식 때 할매할배와 손자 손녀 합동 공연 모습. 이날 경북도는 경북도교육청과 공동으로 예천문화회관에서 각계 인사'3대가 함께 사는 가정 등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를 열었다. 경북도 제공

사회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요소이다. 가정은 인간이 태어나 처음 갖는 그리고 존재가 성숙할 때까지 안고 가는 사회 조직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만드는 과정, 즉 사회화를 하는 첫 교육기관 역할을 한다.

가정은 확대가족에서 핵가족까지 시대에 따라 존재 양식을 달리했다. 과거 대가족 시절 유아기 가족 구성원은 가족들을 보며 부부관계, 부모'자녀관계, 형제'자매관계 등을 체득했다. 또 부모가 조부모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예의범절을 익혔다. 보고 배우는 사회화 과정이었던 것.

시대가 달라지며 핵가족화가 보편적인 모습이 됐다. 가정이 변했듯, 자녀 세대가 경험하는 1차 사회화 과정도 예전과 달라졌다.

◆전통사회의 가족

가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그 구성 형태나 구성원 간 관계는 시대와 사회마다 다르다. 농업이 사회와 경제를 주도했던 전통사회에서는 구성원 수가 많고 복잡한 대가족이 일반적이었다.

혼인한 자녀나 형제가 분가하지 않고 함께 생활하는 형태를 학자들은 확대가족이라 부른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는 노동력이 중요했고 이에 따라서 확대가족은 이상적인 가족 형태였다.

확대가족은 가족 수가 많은 만큼 가족관계가 복잡하다. 대신에 구성원 간 역할을 적절하게 분담해 역할 충돌이나 역할 갈등을 예방하고 조정하는 순기능을 가졌다. 윗대는 대외적으로 가족을 대표하고 의사결정을 했다. 또 가족의 재산을 관리하며 권위적 역할을 맡았다. 아랫대는 수단적 역할을 감당하며 실질적인 업무를 해냈다. 남녀의 역할도 분화돼 남성은 생산활동을, 여성은 가사활동을 도맡았다.

이는 자녀 양육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엄부(嚴父)'자모(慈母)라는 말대로 엄격한 아버지는 규범적 사회화를, 자애로운 어머니는 정서적 사회화를 담당하며 자녀를 균형잡힌 인격체로 길렀다. 조부모는 손자 손녀 교육에 책임감이나 의무감이 덜하다 보니 느긋한 마음으로 손자 손녀를 대했다. 그래서 엄격함에 가려 자칫 결핍되기 쉬운 부정을 할아버지가 채워주고, 지나친 사랑을 표현할 모성애를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 것.

이창기 영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전통사회에서 이러한 조부모의 역할은 자연스레 할배할매의 자녀 양육 과정 참여 증가와 영향력 확대로 이어졌다. 이는 아들 내외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는 동시에 자신들의 즐거움과 보람이 돼 가정 내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정체성 확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문제를 낳는 핵가족

산업화는 가족제도를 바꿨고, 여러 문제를 잉태했다.

농경사회에서는 직장과 가정이 한곳에 있었다. 이후 벌어진 산업화는 직장과 가정을 분리했다. 산업화가 이루어지며 나타난 이촌향도에 따른 결과이다. 그리고 협소한 도시 주거공간과 빈번한 주거지 이동은 확대가족의 형태로는 생존할 수 없게 됐다. 자연스레 핵가족화를 불러온 것.

이는 한국 가족 유형 변화를 살펴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중반 이후 60여 년 만에 농업사회에서 산업화를 거쳐 정보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확대가족의 감소세도 명확하다.

통계청의 연도별 '총인구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966년 27.4%에 이르던 확대가족이 1980년에는 17.8%로 줄더니 2010년에는 7.9%에 지나지 않는다. 산업화 초기 농촌에서 부모를 모시고 생활하던 이들이 도시에 취업하며 부모를 떠난 것. 반면 이 기간 1인 가구 비율이 2.3%에서 24.2%로 폭증했다. 이 수치에는 노인 단독가구도 포함됐다.(표 참조)

핵가족화는 가족 구성원을 통제하기 어렵다. 가족 구성원이 가정 외부에서 각자 독립적인 생활 영역을 구축하고, 가정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때 자녀 훈육에서도 틈을 만든다고 말한다. 가정 내에서도 분자화 된 관계가 규범적'정서적 사회화 기능을 약화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마땅한 도리를 가르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못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자녀의 규범적 사회화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충분한 사랑보다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심지어 맞벌이 가정에서 자녀는 부모에게서 멀어진다. 이는 인격 형성 과정에 심각한 결핍을 일으킨다.

이창기 명예교수는 "핵가족화는 가족 의식을 세속화한다. 가족 의식의 세속화는 가족공동체 결속을 약화시키며 안정을 저해한다"면서 "가족 안정성이 취약하면 가족 해체가 빠르게 진행되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핵가족 시대, 할매할배의 역할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핵가족화가 불러올 문제점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이 사회적 충격을 없애고 위기에 놓인 가족 공동체를 복원하는데 할매할배의 역할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할매할배는 확대가족 때 조부모가 해왔던 역할을 다시 해내야 하며, 이를 위해 할매할배가 꼭 기억해야 할 게 있다고 말한다.

이창기 명예교수는 먼저 새로운 사회문화를 수용하고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저술에 따르면 할매할배는 변화된 사회문화를 수용해 자녀나 손자녀의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세대 간 문화 격차가 큰 상태에서는 혼인한 자녀 내외와의 관계도 원만하게 만들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손자 손녀들과 친밀한 관계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그리고 자녀나 손자녀의 생활에 지나치게 개입하거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전통사회의 가족 갈등은 권위적인 가족 문화 아래 윗대의 명령과 아랫대의 복종을 강요한 데서 기인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할매할배는 사회 변화에 따라 세대별 수용한 문화가 다르고 가치관에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 후 한발 물러서서 관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창기 명예교수는 "젊은 세대의 문화를 이해하고 관조하는 여유를 가진다면 할매할배가 가족관계의 중심에 서서 현대사회의 가족 문제를 극복하고 가족 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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