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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어린이 사진전 60돌 회고전] <36회> 금상 이태영 작 '욕심쟁이' (1992

언니 옥수수 뺏는 '욕심쟁이' 동생

매일전국어린이사진전 제36회 금상 이태영 작
매일전국어린이사진전 제36회 금상 이태영 작 '욕심쟁이' (1992년)

동생을 업은 언니의 옥수수를 빼앗으려는 아이. 업혀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게다가 언니의 옥수수까지 뺏는다는 건 분명 욕심꾸러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옥수수가 얼마나 맛있고 배고픈 허기를 달래줄 음식이란 걸 알게 되면 슬쩍 눈감아 줄만도 하다. 이 사진에서 더욱 압권인 것은 아이의 원망 섞인 의아스러운 눈빛이다. 언니가 옥수수를 왜 주지 않으려고 할까 하는 의아심도 묻어나 보인다. 반면에 언니는 옥수수를 뺏기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동생의 간절함과 언니의 아량이 대조적으로 극적인 효과를 더욱 내고 있다.

여름에 사카린을 넣어서 만든 옥수수 하나만으로 기나긴 오후 한나절의 허기를 때울 수 있었다. 다 먹고 난 옥수수는 여러모로 쓰였다. 다 먹은 옥수수를 말려서 효자손을 만들었고 옥수수 잎을 땋아서 옥수수 인형으로도 만들어 놀았다. 또한 옥수수 알갱이로 목걸이를 만들기도 했다.

옥수수는 약 7천 년 전 멕시코 지역에서 재배되었다. 이후 청교도들에 의해 16세기에 유럽으로 건너갔다가 우리에겐 1700년경에 왔으니 우리의 옥수수 재배는 300년 남짓 되었다. 미국 인디언들이 청교도들에게 맨 처음 옥수수 재배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하니 옥수수가 얼마나 소중한 음식인지 짐작이 간다.

우리에게도 옥수수는 생명의 곡식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니 할머니를 따라 성당에 가서 옥수수 가루와 우유 가루를 배급받아 온 적이 있다. 그 옥수수로 만든 빵이며 우유 죽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특히 옥수수 빵은 1970년대 초반까지 학교에서 점심 대용으로 나왔다. 처음엔 옥수수 빵 하나가 고스란히 나오더니 초등 3학년 때엔 반쪽으로 줄었고 급기야 4학년 땐 아예 그 반쪽조차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학교 축구부나 야구부 아이들은 운동을 마치면 옥수수 빵을 배불리 먹었다. 그 옥수수 빵 하나 얻어먹겠다고 축구를 하고 야구를 하던 아이들이 있었다.

짝꿍이랑 옥수수 빵 반쪽을 나눌 때의 그 신경전은 지금도 씁쓸하기만 하다. 친구가 아니라 내 것을 빼앗아 먹는 도둑 취급을 했으니 말이다. 적어도 옥수수 빵을 나눠줄 때는 사진처럼 언니와 철없는 동생에게 나눠줬더라면 더 사이좋은 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 더 풍성하고 넉넉한 옥수수였을 텐데 말이다. 옥수수 빵 하나로 싸워야만 했던 이름 모를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얘길 전해보고 싶다.

◇1992년 小史

▷남한 내 조선 노동당 적발=1992년 10월 발표됐던 '남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은 건국 이래 최대 간첩사건으로 분류된다. 북한은 당시 조선노동당 서열 22위 간첩 이선실(2000년 사망)을 남파, 1995년 공산화 통일을 이룬다는 전략 아래 남한에 조선노동당 하부 조직인 중부 지역당을 구축했다.

▷황영조 올림픽 마라톤 제패=1992년 8월 10일 제25회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영조 선수가 2시간 13분 23초의 기록으로 몬주익 언덕의 메인 스타디움에 골인, 금메달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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