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읍내에서 승용차로 약 20분 떨어진 조용한 시골 마을.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갓 지어진 새 건물들이 '신도시'를 연상케 한다. 학교'관공서 등 특별한 발전 요소가 없는데도 새 건물이 속속 들어서는 것은 '개발 이익'을 노린 투기꾼들이 몰리면서 생긴 현상이다. 신한울원전 3'4호기 건립과 관련한 땅 투기에 나선 이들로 인해 평화롭던 마을은 이미 쑥대밭이 돼 버렸다.
◆폭등한 땅값, 시골 마을에 무슨 일이
울진군에 따르면 2011년 초 51가구였던 고목마을은 현재 256가구로 급격히 불어났다. 같은 기간 인구는 85명에서 409명으로 4.8배나 증가했다. 토지가격 역시 3.3㎡당 10만원 선에서 현재 50만원까지 5배가량 뛰었다. 한 뼘만 한 공터에도 과실나무 등이 빼곡히 심어져 있고, 아무리 사고 싶어도 땅이 없어 못 살 지경이다.
정확한 날짜를 꼽긴 어렵지만, 고목리에 원전 건설 계획이 알려진 것은 지난 2012년부터로 추정된다. 이후 한수원은 2014년 12월 15일 환경영향평가 및 주민공람을 진행하며 신한울원전 3'4호기 건립에 고목마을이 편입되는 것을 예고했다.
막연한 소문이 나돌며 서서히 늘어나던 고목마을 인구는 발표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원전 건립 이후 마을 이주에 따른 보상금 지급을 노린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고목마을 한 주민은 "원전이 들어선다고 하니 몸 누일 곳만 있으면 무조건 건물이 들어서고 사람이 들어왔다. 묘목 하나까지도 보상해 준다고 하니 이제는 풀 하나 심을 땅도 없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목표는 이주 보상금?
이곳 주민들은 과거 원전에 따른 이주 혜택을 경험한 적이 있다. 지난 2002년부터 신한울원전 1'2호기 건립 계획이 진행되며 이주가 시작된 울진군 북면 덕천마을의 사례다. 당시 덕천마을의 60여 가구는 이주대책 사업과 생계지원 사업의 하나로 한국수력원자력으로부터 90억원, 울진군청으로부터 65억원을 지원받았다. 단순 셈법으로도 가구당 약 2억5천여만원이 지급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명목상 한수원 지원금은 도로'급배수시설'마을회관 건립 등에 쓰였고 울진군청 지원금은 주민들의 택지 및 주택 이주 보상금으로 쓰였다. 울진군청이 지원한 돈 역시 한수원이 지역 발전기금으로 군청에 기탁한 금액이다. 결국, 155억원의 돈이 한수원에서 흘러나온 셈이다.
그러나 당시 덕천마을 사례는 특수한 경우로 꼽힌다. 덕천마을은 현 한울원전이 있는 북면 부구리 인근(옛 가맛골)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다. 이미 원전 건립으로 한 번 정든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또다시 마을을 떠나게 한다는 동정 여론이 공감을 얻었다. 울진군에서도 여론을 참조해 덕천마을 사람들에게 특별 보상금을 지급한 것이다. 이러한 특수 사례가 고목마을에도 적용될 것인가는 미지수다.
◆'내놔라, 못 준다' 팽팽한 신경전
고목마을 주민들의 입장은 강경하다. "기존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건 새로 온 사람들이건 모두 한 마을 주민들이고 터전을 떠나는 보상은 확실히 받아 내겠다"는 것이 고목마을 주민들 주장이다.
고목마을이주대책위 관계자는 "울진 군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원전을 통해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다. 단순한 법률 잣대를 들이밀어 보상 운운할 사안이 아니다"면서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마을에 들어왔고, 또 떠나야 한다면 그만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공동 대응을 하기로 이미 마을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똘똘 뭉쳤다"고 했다.
반면, 한수원은 이미 지정고시에 준하는 발표가 이뤄졌기에 신규 이주자에게는 보상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수원 한울원전 관계자는 "2014년 12월을 지정고시 시점으로 봐야 한다. 이를 토대로 이주 보상 대상자는 40여 가구가 전부"라며 "건립 발표 이후 신규 이주자에 관해서는 보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례도 있다. 결국, 고목마을 신규 이주자는 부동산 가격 이외에는 별다른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투기 막을 수는 없었나
고목마을의 부동산 투기는 지역민들 간의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특히 공무원과 경찰, 군의원, 시민단체 간부들까지 투기에 뛰어든 정황이 알려지며 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인 울진사회정책연구소와 울진정보화사업단은 성명서 등을 통해 이들 공직자와 군의원 등의 투기 의혹을 발표하며 철저한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주종열 울진사회정책연구소장은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법적 제도를 강화하고 공직자와 한수원 직원 등이 투기에 개입돼 있는지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주장에는 이주 보상금이 결국 국민의 혈세 낭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깔려 있다. 덕천마을 사례를 참조하면 고목마을 주민들의 이주보상금으로 640억원에 가까운 혈세가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투기를 막을 방법이 현재로서는 없다. 울진군은 한수원이 고목마을에 대해 지정고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규 입주를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울진군 관계자는 "금지 지역도 아니고 행정법상 주민이 신규 건축을 희망하면 제재할 근거가 없지 않으냐"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한수원 역시 "정부의 에너지 수급계획에 따라 원전 건립 계획을 발표했고, 지정고시에 준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이후 울진군에 4차례나 신규 입주를 제재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한편, 특별 조례를 제정해 화력발전소 예정부지의 투기 가능성을 차단한 삼척시의 사례가 시선을 끌고 있다. 지난해 삼척시는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사업 시행에 관한 조례'를 통해 발전소 예정지의 신규 건축물을 공공 목적의 마을 공동 명의나 지자체장이 허가하는 사안에만 국한하도록 규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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