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역 대합실 모서리 공간에 4칸짜리 독서용 문고가 있다. 승객들이 별로 눈길을 주지 않는 세태에도 책은 늘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이 문고를 관리하는 인물은 청도 화양읍에 사는 이종윤(71) 씨다. 그는 30여 년간 아무도 모르게 문고를 관리해 왔지만, 이를 어디에 내세울 건 아니라고 한다.
그는 1980년대 초 새마을문고 청도군지부 부회장을 맡은 인연으로 청도역 문고 관리를 시작했다. 당시로는 거금을 들여 서울의 한 출판사 재고 책을 싹쓸이하다시피 해 1t 트럭 2대에 나눠 싣고 청도로 가져왔다고 한다. 이 씨는 "당시 정부에서 독서를 장려했고, 지역 70개 마을에 문고를 설치해 책을 비치했다. 또 청도역, 시외버스정류장, 청도경찰서 유치장 등 4곳에서 문고 운영을 시작했다"고 기억했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대합실 문고 이용은 청도에서 동대구 등을 오가는 기차 승객이 책을 읽고 하차하는 역에 반납하는 구조였다고 한다. 승객들이 슬며시 가져가는 책이 너무 많아 보충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고 했다.
그는 "그때는 그래도 재미가 있었지. 옛말에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책을 가져간 누군가는 그 책을 읽었을 테니까"라고 했다.
그는 나이가 들고 사업을 접으면서 문고 관리에 전처럼 사비를 많이 들이지는 못한다고 한다. 대신 책 수집에 적극적으로 나서 지인들에게 안 보는 책 기증을 호소하고 청도교육지원청, 학교 등에서 보내주는 책을 활용한다고 했다. 관리운영 주체도 청도 해병 청룡회로 바뀌었지만, 문고 책장 파손 수리와 책 정리, 보충작업 등은 청룡회 회원인 이 씨가 전담하고 있다.
그는 "스마트폰 탓인지 세태가 변하면서 책 빠져나가는 재미가 없다"면서도 "누군가는 책을 좋아하고 읽을 거로 생각하기 때문에 문고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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