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아이 같은 어른들을 위하여
사람들은 자신만 아는 비밀 하나쯤은 간직하고 산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 하지만 그 비밀을 누군가에게 얘기를 한다면 이미 그것은 비밀이 아니다. "이 말 절대로 하면 안 돼, 너만 알고 있어야 돼"라는 다짐도 언젠가는 밝혀지는 비밀이 되고 만다. 비밀을 말하는 사람은 믿음이 작용해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만 비밀을 듣는 사람은 그 믿음에 보답할 의무만 가지고 있다. 믿음이란 것이 항상 가변적이어서 언제 그 믿음이 깨져서 비밀이 드러날지 모르는 일이다. 즉 비밀은 믿음을 먹고산다.
아이들의 비밀 얘기는 어른 입장에서는 비밀 같지도 않은 비밀일 때가 더 많다. 예를 들면 누구를 좋아한다거나, 숙제를 덜했다거나, 누가 어쨌다거나 하는 신변잡기에 가까운 비밀이다. 죽고 사는, 혹은 신상이 매우 곤란한 문제는 아니란 점에서 아이들의 비밀 얘기는 오히려 흥미 있고 부담 없이 들어줄 만한 비밀이다. 그런데 그 비밀을 얘기한 이후, 언제부턴가 그 비밀에 의한 협박 아닌 협박을 받는 처지가 된다. 너 자꾸 그러면 애들한테 일러준다거나 비밀의 당사자에게 고자질한다는 협박을 수시로 받을 수 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비밀이 된 셈이다. 그나마 예고편을 날리는 협박은 다행이다.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 밥을 먹다가 "할아버지! 지난번 형아가 입학식 날 여자아이와 싸웠어요"라는 폭로가 터진다면 난감한 지경이 되고 만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비밀이 당시엔 하늘이 무너지는 폭로(?)라고 느꼈을 것 같다.
그러나 자신의 상처와도 같은 비밀 얘기가 세상에 드러난다면 그 이후엔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불신 속에 살게 된다.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다. 당시 아이들의 상처 중에 가장 큰 상처는 엄마가 안 계신다는 거였다. 엄마 없는 아이들, 더군다나 고아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놀려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 생각 없이 남을 곯려주는 일이 즐거운 때였다. 상대방이 어떻게 힘들어할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철부지 아이들. 하지만 철부지 아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혹시 지금이라도 나는 상대방의 약점이나 비밀스러운 얘기를 무심코 하고 다니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남의 비밀 하나 못 지켜주는 그런 철부지 아이 같은 어른이 아닌지 말이다.
김경호 ㈜군위체험학교 소장
◇1994년
▷김일성 사망=북한 김일성이 1994년 7월 8일 사망했다. 심근경색이 사인이었다. 이 독재자가 사라짐으로써 베를린 장벽 해체와 같은 냉전시대의 종언이 올 것으로 생각했으나 남북관계는 개선되지 않았고, 북한 주민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지존파 범죄 발생=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5명을 연쇄 살인한 사건이다. 1993년 전라남도 함평군 대동면에서 부유층에 대한 증오를 행동으로 나타내자며 조직을 결성하고, 사람들을 납치 살해하고, 인육을 먹기도 했다.
▷사병, 장교 구타=1994년 9월 육군 53사단에서 창군 이래 처음으로 장교가 무장 탈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병들의 장교 집단 구타와 '장교 길들이기'라는 하극상이 촉발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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