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 우롱한 배신, 정부 신뢰 못 해
내년 대선 신공항 논란 재연 가능성 높아
결정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박근혜정부
영남권 신공항이 또다시 백지화됐다. 그간의 혼란과 갈등을 묵묵히 견뎌온 대구경북민은 분노를 넘어 참담함과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부산이 그렇게 떠들고 시끄럽게 했지만, 대구경북민은 정부의 올바른 판단을 기대하며 오랫동안 참고 기다렸다.
그렇지만 지역민에게 돌아온 것은 김해공항 확장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미봉책뿐이었다. 애초에 김해공항 확장이 어렵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밀양이니 가덕도니 하면서 그렇게 다투고 싸워온 것이 아니던가. 정부가 양쪽의 갈등을 봉합한 결론을 낸 것 같지만, 사실상 '가덕도 아니면 백지화'라는 부산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목소리를 높이고 촛불집회와 단식, 삭발을 하면 국책사업의 방향이 완전히 바뀔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경제성이나 안전성 따위를 고려했기 때문이 아님은 누구나 안다. 2011년 이명박 정권 때와 마찬가지로 정부 여당의 정치적 부담만을 고려한, 최악의 선택이다. 대구'경북민은 손 놓고 가만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꼴이니 어디에 가서 하소연할 곳도 없게 됐다.
지역민을 우롱한, 심각한 배신행위임이 틀림없다. 더는 박근혜정부를 신뢰할 수 없는 이유다. 자신의 공약을 지키지도 못하고, 미봉책으로 얼버무리는 대통령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지역민이 꿈꿔온 것은 단순하게 영남권 항공 수요를 충족하는 '제2의 관문공항'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공항을 통해 세계와 소통함으로써 낙후한 지역 경제를 살리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정부의 이번 결정은 지역민의 꿈과 희망을 깡그리 짓밟고, 지역민의 경제 회복 욕구에 찬물을 끼얹은 폭거와 다를 바 없다. 그동안 신공항 건설 논리를 만들어 홍보하고, 정부와 각계에 호소하며 그렇게 노력한 시간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밀양, 가덕도를 놓고 10년 이상 끌어온 논란을 이번에 끝냈어야 했다. 소모적인 갈등과 혼란을 제때 종식시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책무였는데 이를 완전히 방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4년 전 영남권 신공항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듯이, 내년 대선에서 또다시 신공항 논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정부가 올해 김해공항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내년 중 공항개발 기본계획 수립에 착수한다지만, 가덕도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부산에 의해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정부 발표 직후 부산 시민단체 관계자가 '불행 중 다행'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서 보듯, 부산은 '가덕도가 아니면 백지화' 전략을 썼고 어리석은 정부는 신공항 백지화로 적극 호응했다. 사실상 현 정부는 해묵은 신공항 논쟁을 차기 정부에 떠넘긴 것에 불과할지 모른다. 오히려 지역 갈등과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영남권 신공항이 무산된 것은 기술적'경제적 타당성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명박정부도 박근혜정부도 '결정하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정부 모두 용역 결과를 내세워 타당성이 부족하다고 했지만 '무결정의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경부고속도로도 입안 당시에는 타당성이 전혀 없었다. '다닐 차가 없는데 무슨 고속도로냐'는 반대론이 빗발쳤다.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재론할 필요조차 없다.
어떤 정책적 결정이든 모든 국민, 모든 지역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어떤 정부든 직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선택이다. 특정 정책에 따른 특정 계층이나 지역의 반발을 무릅쓰고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책무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 모두 이 책무를 방기했다. 결정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좀비 정부'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국정 과제의 추진이 번번이 차질을 빚게 된 원인을 국회로 돌려왔다. 사상 최악이었던 19대 국회의 행태로 보아 설득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남권 신공항 부지 결정은 차원이 전혀 다른 문제다. 국회의 동의가 필요 없는, 순전히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다. 박근혜정부는 국회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무능하다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국책사업이라 해도 이쪽저쪽 모두 욕먹기 싫다는 저급한 이해타산에 따라 얼마든지 무산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매우 나쁜 선례를 남겼다. 그 결과는 관련 지역을 좌절시키고 마지막에는 국민 모두를 좌절시킬 것이다. 그런 악성(惡性) 연쇄를 끊을 절호의 기회가 박근혜정부에 주어졌으나 외면했다. 이는 정부 권력의 정당성 위기로까지 비화할 수 있는 책임의식의 부재다. 우리는 그런 정부 밑에서 살고 있다.
댓글 많은 뉴스
홍준표 "제대로 된 공항 만들어야…군위 우보에 TK신공항 건설 방안도 검토"
대구시 '재가노인돌봄통합' 반발 확산…전국 노인단체 공동성명·릴레이 1인 시위
최재영 "벌 받겠다…내가 기소되면 尹·김건희 기소 영향 미칠 것"
홍준표 "TK신공항 SPC 설립 이외에 대구시 단독 추진도 검토 중"
정부, 지방의료 6천억 투입…지방도 서울 수준으로 의료서비스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