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성주와 박 대통령 부녀

'평생을 조국의 광복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김창숙에게 5'16 군사쿠데타는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다…쿠데타에 성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박정희 소장은 김창숙이 입원하고 있던 중앙의료원으로 문병을 왔다…박정희 소장이 옆에 오자 돌아누워 버렸다. 뭔가 많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이듬해 3월 1일, 군사정부는 김창숙에게 건국공로훈장 중장(重章)을 수여하였다.'(박해남, '마지막 선비, 심산 김창숙의 삶과 생각 그리고 문학', 2009)

일제 식민지배를 함께 겪은 독립운동가 김창숙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어색한 만남이다. 1879년 성주에서 태어나 유학을 배운 김창숙은 독립운동에 헌신한 '마지막 선비'로 통한다. 광복 후에는 이승만 정권에 맞서 통일운동과 반독재 민주화 투쟁, 독립운동 애국지사 현창사업에 매달렸다. 그러다 5'16을 맞았고 이미 83세의 쇠약한 몸이라 병원 신세를 지던 때였다. 왜 고개를 돌렸을까? 저자는 '평생을 조국의 광복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그에게 5'16 쿠데타는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박 전 대통령과 서먹했던 김창숙은 바로 1년 뒤 1962년 5월 10일 삶을 마쳤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의 성주와의 인연은 깊다. 집안인 고령 박씨 집성촌과 선영이 있는데다 바로 아버지(박성빈)가 살고 활동했던 곳이다. 김창숙보다 앞서 1871년 태어난 부친은 특히 1892년 22세 젊은 시절 성주에서 동학 접주(지역 책임자)로 누볐다. 박 전 대통령은 1970년에 쓴 글 '나의 소년시절'에서 '선친께서 20대에 동학혁명에 가담했다 체포돼 처형 직전에 천운으로 사면됐다고 한다'고 밝힌 것처럼 동학에 관심을 보였다. 1963년 전북 정읍 황토현에서 열린 갑오동학혁명기념탑 준공식에서 축사하고 1971년 동학 창시자 최제우의 경주 생가터 유허비 제자(題字)까지 한 까닭이리라.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이 남다른 사연을 간직한 성주와의 인연이 딸 박근혜 대통령 시절인 지금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지난 13일 확정 발표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탓이다. 선대 고향마을인 선남 황신마을의 마을회관 내 걸린 박 대통령의 대형사진은 이튿날인 14일 아예 사라졌다. 주민들이 "고향을 배신했다"며 섭섭함을 감추지 않으며 떼어냈기 때문이다. 옛 선대로부터 맺어온 성주와 성주사람과의 남다른 인연이 박 대통령 부녀(父女) 2대에 걸쳐서 서먹서먹한 결말로 끝날까 안타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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