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에 관한 모든 것/ 파스칼 보니파스 지음/ 정상필 옮김/ 레디셋고 펴냄
요즘 신문에서 중요하게 다룬 소식들을 살펴보자. 최근 사흘간 연달아 발생한 굵직한 소식들이 있다.
▷7월 13일 한국 국방부는 경북 성주군 성산포대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지역으로 발표했다.
▷7월 14일 프랑스 니스에서 테러가 발생해 최소 84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7월 15일 터키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들 소식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단순히 보면 한국에서, 프랑스에서, 터키에서 발생한 별개의 소식들이다. 그럼에도 이 소식들은 세계가 주목했고, 단발의 사건'사고로 인식된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여러 갈래로 또 다른 문제 및 생각해 볼 거리들을 낳는, 긴 호흡의 이슈로 여겨지고 있다.
세 가지 소식의 바탕에는 지정학(地政學' geopolitics: 인문지리학의 원리를 적용하여 국제정치를 분석하는 학문)이라는 분석 틀이 있다. 이 분석 틀은 지정학적으로 의미 있는 소식을 전하는 언론은 물론, 정부와 비정부기구(NGO), 전문가부터 일반 시민까지, 모든 영역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다양한 영역에서 공유한다.
성주에 사드가 배치되는 일은 성주군, 더 크게 보면 경상북도, 좀 더 넓혀 봤을 때 대한민국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 등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 정세를 움직이게 만드는 어떤 힘이 숨어 있다. 그 힘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 지정학이다.
2015년 11월 파리 테러에 이어 프랑스에서 다시 테러가 발생한 까닭에 대한 분석도 지정학에서 나왔다. 유력한 분석은 테러범들이 미국보다 침투하기 쉬운 유럽의 국가들 중에서도, 알제리 등 이슬람 지역을 식민지로 삼았던 프랑스에 대한 증오심을 바탕으로 계속 프랑스를 노린다는 것이다.
경제 이슈도 경제학에 앞서 지정학을 바탕으로 분석된다. 성주 사드 배치, 프랑스 니스 테러, 터키 쿠데타 이후 쏟아져 나온 소식은 현지 소식뿐만이 아니었다. 사드 배치, 테러와 쿠데타가 지정학적 리스크를 만들어 미국 국채 수익률 상승, 국제유가 부담 요인 증가, 증권가 방위산업 관련 주 주목 등 세계 경제 속 다양한 움직임을 야기한다는 소식도 이어졌다. 다시 그 소식에 대한 분석과 전망이 여러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까지만 봐도 지정학이란 꽤 방대하고 퍽 복잡한 것인데, 이게 끝이 아니다. 지정학은 과거와의 질긴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예컨대 성주 사드 배치 소식 단 하나 때문에 느닷없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북한이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닐 터다. 국제관계에는 뿌리가 있다. 명징하게는 20세기의 국제 정세와 지금(21세기)의 국제 정세가 얽히고설킨 인과 관계를 맺고 있고, 흐릿하게는 그보다 앞선 시대의 구도 역시 현재까지 꽤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다.
책에 따르면, 큰 전환점이 된 지정학적 사건이 있다. 15세기 대항해시대를 연 이후 줄곧 국제 정세의 중심에 섰던 유럽이 두 차례 세계대전을 자초, 국제관계의 축이 미국과 소련으로 옮겨간 것이다. 책은 바로 이때인 1945년부터 지금까지 세계 지정학 구도를 집중해 다룬다. 세 시기로 구분한다. '냉전' '데탕트' '양극화 이후'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세계는 냉전과 데탕트의 시기를 거쳤다. 그러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양극화 체제는 자취를 감췄다. 이어 서방세계가 아닌 중국과 일본 등 다른 지역의 국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다극화 체제가 시작됐다. 혁신적인 일이었다. 세계대전 같은 큰 전쟁의 결과가 아닌 다른 이유로 국제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서다. 여태껏 사용한 지정학과는 다른 차원의, 좀 더 정밀하며 여러 변수도 감안하는, 그래서 국제관계를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는 분석 틀이 필요해졌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제시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꽤 진한 통찰이 녹아있는 부분을 책에서 발췌해 소개한다.
'오늘날 대립 구도는 그 개념이 바뀌었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제 핵전쟁의 위험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대립 구도는 뚜렷하게 남아 있다. 커다란 전략적 변화가 생긴 것이다. 서방세계 국가들의 독점이 깨지고 남반구 국가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다원주의 체제로 바뀌었다. 이는 서방 강대국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독점 구도가 더 이상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통하지 않게 됐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다원주의로 우리는 ('냉전' '데탕트' '양극화 이후'에 이은) 네 번째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인류를 짓누르는 중대한 위협에 적절하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대응하기 위해 결국 단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
(답 관련 내용 생략)
그런데 우리는 아직 그곳에 이르지 못했다.'
저자 파스칼 보니파스 국제관계전략연구소장(파리 8대학 유럽학연구소 교수)이 제시하는 답은, 성주 사드 배치 문제를 포함해 지금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지정학적 문제를 풀 수 있는 답으로도 읽힌다.
396쪽, 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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