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두 개의 침실이 있는 집입니다. 한쪽 방에는 근심이 살고, 다른 방에는 기쁨이 삽니다. 인간은 그렇게 큰 소리로 웃어서는 안 됩니다. 큰 소리로 웃으면 옆방에 있는 근심을 깨우게 됩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입니다.
저는 하청 글쓰기 노동자입니다. 적당한 소음은 집중하기에 좋다는 말을 듣고 커피도 마실 겸, 글을 쓰기 위해 동네 커피숍에 갔습니다. 손님이 없는 층을 골라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펼쳤습니다. 잠시 후, 어디선가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젊은 엄마 둘이 제 곁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세 명의 아이들은 엄마들의 수다가 지겨운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뛰어다닙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든 말든 수다에 여념이 없습니다. 보다 못한 저는 뜨거운 커피도 있고 테이블 모서리에 혹시라도 아이들이 다칠까 봐, 엄마들에게 아이들이 뛰지 못하게 해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을 했습니다. 제 부탁에 대한 대답은커녕, 아이들의 엄마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야, 엄마가 뛰지 말랬지! 조용히 하란 말이야!" 아이들이 멈칫하더니 다시 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야, 이리로 안 와? 맞아봐야 알겠어? 뛰지 말란 말이야!" 아이들은 엄마들의 고성에 멈칫하다가, 다시 뛰기를 반복하고, 그럴 때마다 엄마들의 고성도 반복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야, 이 아저씨가 글 쓰는데 시끄럽다고 하잖아. 조용히 안 해!" 제가 들으라는 듯이 소리를 지릅니다. 아이들이 장난치며 뛰어다니는 소리보다 엄마들의 소리가 훨씬 더 높고 커서, 엄마들의 목소리에 제가 기겁을 할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이 난감한 사건을 겪으면서 '세상에 나쁜 아이들은 없고 예의가 없는 어른만이 있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두 가지의 마음이 부딪치는 것이 불편해서 제가 미리 자리를 뜨긴 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이런 풍경은 커피숍이나 음식점에서 흔히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글을 쓰러 간 커피숍은 카프카의 말처럼 두 개의 침실이 있는 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기쁘게 웃을 때, 옆의 테이블에는 이별하는 연인이 마지막 차를 마시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소리 내서 크게 웃을 때, 어느 이웃은 입을 틀어막고 울음을 삼키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일이 근심과 기쁨을 마중하는 일입니다.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소리 지르는 엄마들을 생각하니, 공자의 사물잠(四勿箴) 생각도 따라옵니다. 비례물시(非禮勿視)하며 비례물청(非禮勿聽)하며 비례물언(非禮勿言)하며 비례물동(非禮勿動)이니라.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마라." 너무 큰 소리로 웃으면 옆방에 있는 근심을 깨우게 된다는 카프카의 금언(金言)이 어쩌면 공자께서 말씀하신 예의 출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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