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학이 붐이다. 민주화와 자치의 실시로 각 지역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인 것 같다. 지역학이라는 이름의 깃발을 가장 먼저 올린 것은 제주학이다. 제주학은 제주라는 독특한 문화와 자연에 관심을 가진 외부 전문가들의 자극과 제주 지역 내의 지식인들이 결합하여 일찍이 제주학회를 결성하고 지역 연구를 시작했다. 그다음으로는 서울학이 주목할 만하다. 서울학은 정도 600년을 계기로 깃발을 올리고 전국에서 가장 힘차게 지역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인천학이 그 뒤를 슬금슬금 따랐는데, 인천학의 육성은 지방선거 공약의 하나로 등장할 정도로 지역사회의 주요 이슈가 되어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고 있다. 부산학도 늦게 출발을 하였으나 우리나라 두 번째 도시로서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은 지역사회의 강력한 희망을 바탕으로 탄탄한 성과를 내고 있다. 대구경북학은 출발도 늦었고 지역사회의 관심도 느슨한 편이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지역학을 추동하는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는 것이다. 지역학이 발전한 일본의 경험을 보면 다양한 유형이 있다. 고자와 야스노리 한국외대 교수는 일본지역학의 변천사를 행정주도형, 대학주도형, 민간주도형, 주민지역학으로서 행정주도형 등으로 나누고 있다. 서울학은 관주도로 시작하였으나 광범한 대학, 민간 참여로 확대된 유형이다. 인천학은 전적으로 인천시의 육성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관주도형이다. 제주학은 민간이 주도하여 설립하였고, 부산학은 대학으로부터 강력한 힘이 나오는 가운데 관이 뒷받침을 하고 있다.
앞선 사례를 보면 대학, 민간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가장 결정적 힘은 지방정부가 물적 토대를 마련해야 지역학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학은 서울시정연구원, 서울시립대학 서울학연구소, 역사박물관, 서울시사편찬위원회 등에서 꾸준한 연구가 쌓이고 있다. 인천학은 인천시가 인천대학교에 인천학연구원을 만들어 1년에 수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기르고 있다. 부산학은 대학교수들이 주도하는 로컬리티 사업단이 강렬한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가운데 부산발전연구원이 가세하여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제주학도 오랫동안 민간이 만들어놓은 성과를 바탕으로 제주발전연구원이 새로운 비전을 만들고 있다.
민간주도형이라 할 수 있는 대구경북학은 의미 있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85년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지방사회연구회'가 자발적으로 생겼다. 1992년 '대구사회연구소'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2012년 지역학 연구를 표방하는 '대구경북학회'가 결성되었다.
그러나 지방정부의 관심은 미미했다. 대구경북연구원에 대구경북학연구센터가 생겼으나 이렇다 할 존재감이 없었다. 처음 얼마간은 지역대학 교수들이 센터장을 맡았다. 하지만 대구시나 경상북도가 이 센터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 아무리 사명감을 가진 교수인들 성과를 낼 리 있었겠나? 대부분 엉거주춤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고 말았다. 지금은 그마저도 후퇴하여 대구경북연구원 내부 연구자가 다른 일을 겸하여 대구경북학연구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대구경북학회가 결성된 후, 연구저널 를 공동으로 발간하면서 약간의 기반을 다져나가고는 있다. 지역학이 앞서 발전한 지역은 모두 지방정부가 야심적인 투자를 하였고, 특히 지방정부가 설립한 연구원이 지역학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도 대구경북연구원 대구경북학연구센터를 키우고 확대하고 강화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이 대구경북학 연구의 거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다른 지역에 비해 뒤진 지역학 연구의 지형을 바로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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