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느그가 국대(국민대표)가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을 곰곰이 생각한다. 패러다임이 급속도로 바뀌는 현대사회에서도 순혈과 동질성에 기초한 가족 내 관계 구도나 성(姓) 다른 외간 식구에 대한 차별 등 불평등 구조는 불변이라는 사실을 속담은 구구절절 증명한다. 혼인이라는 장치에 한 가족으로 묶였지만 며느리의 존재는 낯설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울타리 안팎에 걸쳐진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며느리도 안다.

살다 보면 한 줄 속담에 딱 들어맞는 상황이 흔히 벌어진다. 그렇다면 모든 며느리의 공적이 된 '말리는 시누이'는 누구인가. 적당히 편드는 척하면서 실상은 팔이 안으로 굽는 존재 말이다. 뜯어보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치권과 기업의 밀착은 '때리고 말리는' 관계의 정점이다. 특히 1%의 재벌기업이 저지르는 사고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국민 가슴이 조마조마한 각종 사건 사고는 없었다. 기업이 마구 뿌려댄 지뢰에 국민은 거의 노이로제 상태다.

위아래 할 것 없이 회사를 거덜낸 대우조선 사태에서부터 한진해운 파탄, 가습기 살균제 사태, 롯데그룹 총수 일가 비리, 미르재단 의혹 등 기업이 끼이지 않은 사고는 없다. 기업의 이런 일탈에 국민은 하루가 멀다하고 풀죽은 며느리처럼 양 뺨을 내놓아야 할 신세다.

그런데 정작 '책임 있는 사람들'(responsible men)의 위치를 지켜야 할 청와대와 정부'국회는 무엇을 했나. 기업 편들기도 모자라 감싸고 갑의 위세로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까지 얹었다. 국민 눈에 얄밉다 못해 한심한 존재로 낙인됐지만 거꾸로 이들로부터 외면받고 며느리처럼 찬밥 신세가 된 것은 국민이다. 교육부 고위 관료의 입에서 "민중은 개'돼지처럼 대하면 된다"는 발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나마 믿는 도끼였던 국회는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다. 협치 구호는 일찌감치 실종되고 정당 간 공방만 남았다. 타협과 절충은 개뿔, 야합과 기세 싸움이 전부다. 호통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국정감사마저 내팽개친 그들이다. 물때도 모르는 여당 대표의 느닷없는 단식에 손가락질이 쏟아지고, 국회를 원만히 이끌어가야 할 국회의장은 자장면 트윗이나 날릴 만큼 한가하다. 계속되는 북한 핵 놀음에도 정치판은 마냥 입 놀음이니 국민대표를 자처한 국회를 쳐다보는 국민이 순전히 '맨입'이다. 단식을 풀고 오늘 국감에 복귀해도 우리 정치에 희망이 거의 없음을 국민은 안다.

국회가 이 꼴이니 정부는 고삐 풀린 망아지다. 정부 부처와 법원'검찰, 국세청 등 공직사회는 아예 때리는 시어미 꼴이다. 80일간 갈팡질팡한 사드 배치 논란에서부터 우병우 수석 파문, 김재수 장관 임명 파동 등 매질도 가지가지다. 기업의 팔을 비틀어 수백억원을 긁어모은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도 그렇고 친구의 기업에 직위를 팔고 검은돈을 챙긴 진경준 검사장 사태, 스폰서 부장검사까지 묵은 때가 덕지덕지다.

"남미의 문제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국가가 부유층에 종속된 상황이다." 브라질 경제학자 브레셀 페레이라의 말이다. 권력이 자본과 부유층은 풀어놓고 밥벌이에 허덕이는 국민만 통제했다. 남미가 제3세계로 추락한 까닭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현실이 남미와 크게 다른가. 권력과 국회, 정부기관은 재벌 통제를 일찌감치 포기했다. 거꾸로 끈끈한 공생 관계다. 시어미도 버거운 마당에 시누이까지 교묘히 돌려치면 천하의 어떤 며느리가 버텨내나.

엊그제 프로야구 롯데 팬들이 내건 플래카드가 화제다. 올해 한 시즌 동안 NC 다이노스에 14번이나 내리 지자 '느그가 프로가'라며 조롱한 것이다. 얼마나 뿔이 났으면 그랬을까 싶다. 지금 국민 심정이 이와 다를까. 가슴 속에 '느그가 국대(국민대표)가' 플래카드 하나씩 걸어두고 있다. 권력과 기업이 내내 정신줄을 놓고 있으면 국민대표인 국회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시누이가 더 미운 게 그 때문이다. 속담 틀린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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