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 터졌다.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은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 봐도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구태다. 요즘 세상에 권력의 힘으로 재벌 돈을 모아 사업을 벌이려 했다는 자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권력층이 '생각'을 하면서 움직였는지, 고언(苦言)하는 참모를 두지 않은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아직까지 온갖 의혹만 무성할 뿐, 사건의 전모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현재 확인된 몇 가지 팩트에서 사건의 대강은 살필 수 있다.
미르재단 설립은 지난해 10월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대기업들에 긴급 통지를 보내면서 개시됐다. 다음 날 대기업 임원 50여 명이 한 호텔에 기금 출연 증서와 인감을 들고 모였고, 문화체육관광부 주무관이 세종시에서 서울로 올라와 오후 5시쯤 전경련으로부터 직접 서류를 받아 등록했으며 다음 날인 27일 오전 9시 30분 법인 등록이 완료됐다. 같은 날 오후 2시 현판식까지 열렸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이틀 만에 출연기금 486억원의 재단이 만들어졌다. K스포츠재단도 올해 1월 비슷한 과정을 거쳐 대기업 출연금 288억원을 모아 설립됐다.
여기까지는 전경련'문화부 등도 인정한 팩트다. 무슨 이유로 대기업들이 774억원이라는 거금을 출연했는지, 문화부 관계자가 서류를 받아가면서까지 하루 만에 재단법인 설립 허가를 내줬는지, 그리고 허위 회의록을 만들면서 서둘러 설립했는지, 온통 의문투성이다. 상식적으로 권력의 압력, 청와대의 힘이 아니라면 이런 비정상적인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더 황당한 것은 최순실과 차은택이라는 두 인물의 그림자가 계속 어른거린다는 점이다. 일부 언론과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운 '비선 실세' 두 사람이 재단 설립을 주도했다고 폭로했다. 두 사람이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이런 짓을 벌였고, 청와대 참모까지 가담했다면 엄청난 권력형 비리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이 의혹을 낮춰 보더라도, 박 대통령이 최악의 위기 상황에 놓인 것은 분명하다. 적극적인 야당 지지층만 떠들어대는 사건이라면 모를까, 전 국민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사건이기에 금방 묻힐 유형이 아니다. 새누리당이 국감에서 기를 쓰고 이슈화를 막고 있지만, 그 유효기간은 짧으면 6개월, 길어봐야 1년 정도일 것이다. 정권의 힘이 떨어지는 순간, 처절하게 난도질당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때까지 의리를 지킬 친박계 의원이 몇이나 될까.
청와대는 지금까지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외부에서 보면 시간만 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뾰족한 수가 없으니 참고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정말 억울해서 해명할 필요조차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그냥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다. 두고두고 박 대통령을 따라다니며 고달프게 할 사건이다.
요즘 박 대통령은 북핵과 안보 문제에 전력을 쏟고 있다. 대통령 자신의 미래가 불 보듯 훤하게 보이는데, 북한문제에 노심초사하는 모습을 볼 때 좀 안쓰럽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 전체가 불안해진다. 대통령이 스캔들에 휘말리는 순간, 국가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지, 9'11테러가 이를 증명했다. 1998년 르윈스키 스캔들로 곤경에 처한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테러 징후를 감지하고 알 카에다와 빈 라덴을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백악관 참모들은 '섹스 스캔들을 피하기 위한 군사행동'이라고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며 반대했다. 공격 계획은 폐기됐고, 미국은 3년 후 미증유의 테러를 당했다.
박 대통령이 국정에 전념하려면 이번 의혹을 국민에게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용서받을 것은 용서받아야 그나마 남은 임기 동안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다. 그냥 넘기려 하다간 대통령 자신도 불행해지고, 국가도 불행해진다.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