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3월, 제9대 국회에서 73명의 의원이 유신정우회(유정회)라는 정치 결사체를 결성했다. 1972년 유신헌법에 따라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의 국회의원을 대통령이 추천하면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승인'선출하였는데 이렇게 국회의원이 된 이들이 만든, 정당 아닌 단체였다. 유정회 의원들은 정치적 파당과 경쟁, 분열을 극도로 혐오한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를 관철하는 데 앞장섰다. 정치적 목표를 유신체제를 수호하는 데 두고 적극적이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1980년 10월, 제5공화국 헌법의 발효로 해산될 때까지 한결같았다.
유신체제와 통일주체국민회의, 유정회는 우리 헌정사에 오점으로 남았다. 박정희 정권은 장기 집권을 위해 유신체제를 만들었고 유정회는 대통령의 뜻을 민주공화당과 함께 다수 여당 체제로 지원했다. 유정회 의원들은 거수기로 전락해 집단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모았고 유신체제의 전위대로서만 존재의 의미가 있었다. 삼권분립은 형식에 그쳤고 행정부에 대한 입법부의 견제는 생각할 수 없었다. 박정희 유신정권은 이를 '한국적 민주주의'로 포장했지만, 민주주의가 고사한 암울한 시기였다.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친박 돌격대'로 불리는 의원들이 있다. 3선의 조원진 최고위원과 재선의 김진태, 이장우, 김태흠 의원 등 4명이다. 재선의 이완영 의원과 이우현 의원이 포함되기도 한다. '친박 돌격대' 의원들은 최근 청와대의 아킬레스건인 우병우 민정수석 비리 의혹과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의혹과 관련해 국정감사 증인 채택을 막는 데 힘을 쏟았다. 여러 의혹의 진상을 밝히길 원하는 여론과는 달리 정권 보호에만 골몰하고 있다. 막말과 강성 발언을 일삼으면서 국민을 대변하고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있다. 이들에게서 과거 유정회 의원들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유신체제가 끝난 지 30여 년이 지나 정권을 위해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의원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청와대 홍보수석 출신인 이정현 당 대표 역시 억지스러운 단식을 하면서 '당무수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할 말을 하지 못하는 당 대표와 '친박 돌격대' 의원들이 강한 파열음을 내면서 새누리당은 한심한 여당이 된 지 오래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인 경제 발전을 기대했던 국민에게 민생을 살피기보다는 아버지 시대의 어두운 면을 재현해내는 박근혜 정권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친박 돌격대' 의원들 역시 선거 때만 유권자를 바라볼 뿐 당선된 이후에는 민의를 철저히 외면하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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