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황당선과 중국 어선

'황당하다'는 말은 중국 배 '황당선'(荒唐船)에서 나왔다. '말이나 행동이 참되지 않고 터무니없을' 때 쓰는 말이다. 사전은 '황당선'을 '우리나라 연해에 출몰하던 소속 불명의 외국 선박을 뜻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거칠 황'에 '당나라 당' 자를 사용한 것으로 볼 때 우리나라 연안에 침범해 노략질을 일삼은 중국 배를 지칭한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황당선의 횡포는 다 열거하기 힘들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황당선 기록만 80차례를 넘는다. 요즘 중국 어선처럼 떼거리로 몰려와 조선 바다를 제 집 안방처럼 넘나들며 갖은 만행을 저질렀다. 주로 어선이었지만 여차하면 해적 떼로 변했다.

영조는 "중국 배들이 해삼을 채취하려고 서해안에 몇백 척이 출몰해 지방 수령들이 쫓아내려고 해도 저들은 수효가 많고 우리는 숫자가 적다"고 개탄했다. 숙종 때는 "황당선이 한꺼번에 32척이 나타났다"는 기록이 있다. 하도 많다 보니 지방 수령들과 군인들이 감당하지 못해 몰래 술과 양식을 주면서 달래어 떠나게 했을 정도였다. 광해군 때는 군산진 만호(万戶)가 피살되는 일도 있었다.

조선 정부는 이들로부터 바다와 백성을 지킬 힘도, 의지도 없었다. 중국 측에 외교문서를 보내 조치를 취해달라고 읍소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황당선에 만호를 잃었을 때조차 광해군은 "국가의 큰 치욕이다"는 말로 때웠다.

중국 역시 외교 수사로 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중국 황제가 조선에 내린 칙서는 "금령을 어기는 배는 무력으로 진압하고, 사람을 잡으면 압송하되 상국인이라 하여 주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중국으로서도 일일이 단속하기 힘드니 조선이 눈치 보지 말고 알아서 하라는 뜻이었다. 중국은 조선더러 알아서 하라 했고, 힘없는 조선은 상국을 자처한 중국 눈치를 보며 알아서 기었다.

이는 오늘날 서해 어장이 중국 어선에 당하고 있는 상황의 판박이다. 중국 어선이 우리 해경단정을 고의로 침몰시키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을 때조차 우리 정부는 31시간을 침묵했다. 해경보다 중국과의 외교를 먼저 걱정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리고 나온 조치가 중국 대사를 불러 항의한 것이었다. 이를 안다는 듯 중국 정부는 사과는커녕 한국 정부를 향해 '냉정하고 이성적인 처리'를 요청했다.

오늘날 중국 어선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조선시대 '황당선'에 대한 조정의 대응과 한심하리만큼 닮았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