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과 전망] 지금 북한이 붕괴한다면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공사의 한국 망명을 비롯해 최근 북한 고위층이 잇달아 탈북하고 있다. 이전까지 북한 주민의 탈북이 주로 생계형 탈북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작금의 고위층 탈북은 '김정은 정권의 붕괴 징후가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몇몇 고위급 인사들의 망명을 북한 체제의 붕괴 조짐으로 연관 짓는 것은 무리다.

기존 북-중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계형 탈북'과 마찬가지로 해외 주재 북한 인사들의 망명 역시 넓게 보자면 '생계형 탈북'에 가깝다. 이들의 김정은 체제에 대한 염증과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은, 해외에서 서구식 교육을 받은 자녀들의 '장래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란 자녀들이 폐쇄적이고 압제적인 북한에서 장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큰 것이다.

이런 현상을 임박한 북한 붕괴 조짐으로 보기는 어렵다.

북한 붕괴가 임박했다고 볼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북한이 철저한 감시 사회라는 것이다. 북한 내부는 기아와 질병, 정치적 탄압이 극심하지만, 소규모 시위도 불가능할 정도로 감시와 억압 시스템이 철저하게 작동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집안이나 국가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가출이나 망명에 앞서 내부에서 이를 개선하려고 시도한다. 인류 역사에 유례없는 인권 탄압이 벌어지고 있지만 북한에서 조직적인 저항이 발생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감시와 억압 체제가 치밀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북한 붕괴 가능성이 희박한 세 번째 이유는 중국이다. 공산당 독재국가 중국 입장에서 북한은 자유민주주의 진영 및 해양 세력(미국'일본)의 대륙 진출을 막는 강력한 성벽이다. 중국은 북한 붕괴로 민주주의 바람 혹은 해양 세력의 그림자가 자기네 국경 주변에 어른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해도 '말로만 비판할 뿐'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자를 차단하지 않는 것은 '북한 핵도 싫지만' '북한 붕괴는 더 싫기 때문'이다.

설사 북한이 붕괴하더라도 그것이 곧 한국 주도의 남북통일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국과 북한은 휴전선으로 차단돼 있고, 북한이 붕괴할 경우 수십만 혹은 수백만 난민이 북-중 국경을 넘을 것이다. 수만 명의 무장 탈영병들이 중국 동북 3성 일대에서 산적이나 야적으로 전락해 노략질을 일삼을 수도 있다. 중국 대륙에 대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핵기술'탄도미사일과 같은 군사기술이나 무기가 신장 위구르나 내몽골, 티베트 등 중국 내 독립 추진 세력들 손에 들어갈 수도 있다. 나라가 망하는 판국에 돈이라도 벌어보자는 과학자와 군인들이 있기 마련이다. 체제 안정을 바탕으로 경제성장을 꾀하는 중국에 그런 상황은 치명적이다. 게다가 북한 붕괴가 한국 주도의 남북통일로 이어진다면 중국으로서는 턱밑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비수를 두는 셈이 된다.

중국이 북한 붕괴 사태에 손 놓고 있을 리 없다. 붕괴 조짐이 있거나 붕괴가 시작되면 중국은 신속하게 인민해방군을 북한 영토로 투입해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질서를 유지하려고 들 것이다. 이미 중국 인민해방군은 이에 대비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결국 갑작스러운 북한 붕괴는 6'25 때 북한 괴멸 직전의 중공군 개입처럼 '분단 역사'를 반복할 뿐이다.

따라서 북한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전제로 하는 통일 전략은 현실적이지 않다.

우리로서는 북한 정권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막고, 미국과 일본 등의 자본과 문화가 북한으로 많이 유입되도록 유도하는 편이 현명하다. 미'일 자본에 대한 북한의 의존도가 높을수록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줄어든다. 자연스레 한반도가 중국의 패권 질서에 휘말릴 위험도 감소한다. 장기적으로는 통일 후 우리가 감당해야 할 북한 내 사회기반 건설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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