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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의 문학노트] 박상우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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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적으로 잡은 손

우리는 그랬어. 사실 그 대상의 본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대상에 저항하기 위해 살았어. 우린 그것을 열정이라고 표현했고 그것을 꿈이라고 생각했어. 20, 30명씩 떼를 지어 다녔고 막걸리를 마셔댔어. 그리고는 모이면 부터 , , 까지를 얼굴을 찡그리고 불러댔어. 취흥이 도도해지면 를 불렀어. 그러면 우리들의 꿈이 벌써 문 밖에 와 있는 것 같았어. 운명적으로 우리들만이 꿈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그리고는 왜 그리도 눈물을 많이 쏟아댔는지. 그렇게 눈물 속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어. 하지만 그 모든 건 이미 지나간 일일 뿐이었어. 이제 우린 흩어지고 있었으니까. 흩어져 감은 지난 시간에 대한 회한의 정리이며 결국은 다가올 시간에 대한 예고니까. 우린 이미 '우리'가 아니었던 거야. 그런데 그거 알아? 그때에도 우리의 밀실은 있었다는 거. 그것이 바로 사랑이었어. 그녀를 만난 거야. 대형 자가용을 몰면서 나타난 그녀, 하지만 그녀의 집인 '샤갈의 마을'에는 온기 하나 남지 않은 폐허와 다름이 없었어. 80년대의 희망과 열정이 숨 쉬는 광장과는 가장 동떨어진 밀폐된 공간, 우리가 그녀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은 술을 마시는 일, 그리고 그녀의 넋두리를 듣는 일이었어.

그가 보고 싶다고. 그를 기다린다고.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에서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다고. 춥다고. 배고프다고. 그리고 남자와 자고 싶다고. 그건 이미 90년대의 목소리였어. 80년대의 열정이 사라진 곳에 남은 찌꺼기들의 목소리였어. 실상 여자의 중얼거림은 우리들의 중얼거림이기도 했어. 우리들의 신음이기도 했어. 나아가 욕망으로 만들어 낸 권력이 다시 지난 시간들로 회귀하려는 음모를 달성하기 위해 유혹하는 언어들이기도 했어.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아니라 이미 그 음모의 악랄함을 인식하고 있는 세대들의 침묵이 진정 그들에게는 필요했던 거야. 슬픈 풍경. 지나간 시간들을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건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는 증거인 거야. 하지만 그곳은 우리가 이미 갈 수 없는 곳에 있어. 그녀에게 그가 결코 오지 않는 것처럼. 그럼에도 여전히 우린 '우리'임을 확인하고 싶었어. 그건 필사적인 것이었어.

몽중에 그러는 것처럼, 그때 우리 중 하나가 탁자 밑으로 손을 뻗어 나머지 하나의 손을 필사적으로 거머쥐었다. (박상우, 부분)

서로의 손을 필사적으로 거머쥐는 몸부림, 마치 낡아버린 흑백 누아르 필름처럼 쓸쓸한 풍경. 왜 서로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을까? 1980년대와 90년대의 교차지점에서 등단한 박상우의 소설에는 이월가치로 가득해. 이월가치란 '지나간 연대가 다음 연대에게 당연히 넘겨주어야 할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겨주지 못한 가치'라고 하지. 당연히 다음 연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치. 가장 소중했던 시간과 기억들이 다음 세대에겐 무의미한 무엇이 되어버리는 슬픔. 정말 슬프지 않아? 지금 우리가 그래. 모든 세대가 그럴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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