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 철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실존적으로 불안한 존재이다. 그 불안은 분리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되는데. 일차적으로 출산을 통한 어머니와의 분리에서 시작하며, 사회적 소외,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오는 삶과의 분리 속에서 극대화된다. 이러한 분리는 인간관계의 단절을 유발하고 그 단절은 고독과 불안을 자아낸다.
분리는 본성적 차원과 의도적 차원의 두 가지 분야에서 일어난다.
1. 본성적 분리 : 남녀의 분리
2. 의도적 분리 : 죄를 통한 분리-신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분리
한편, 이 분리현상은 인간으로 하여금 일치를 향한 귀소본능을 유발시킨다. 일치를 위한 희망은 여러 가지 분야에서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때로는 비인간적인 방법으로도 자행되는데 예를 들면,
1. 힘에 의한 일치-군사적 정복
2. 주변적인 것을 통한 일치-사치, 장식
3. 자연과의 일치-토템
4. 환상적 일치-약물이나 황홀경을 통한 불안회피 등
한편, 인간적 차원의 일치는 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을 통해 이루어진다. 본성적 분리는 사랑을 통한 혼인으로 일치에 이를 수 있고, 죄와 잘못으로 인한 의도적 분리는 용서와 화해를 통해 일치를 이룰 수 있다. 다른 모든 비정상적인 노력들은 결국 일치라는 희망이 아니라 분리에 대한 회피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며 결국은 인간을 실망과 절망으로 이끌어 가게 된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온갖 분리로 가득 차 있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분리, 강자와 약자의 분리, 금수저와 흙수저의 분리, 남과 북의 분리! 그래서 우리는 불안하다. 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앞서 말한 비정상적인 시도들은 일시적으로 효과 있어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눈가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일치를 시도해야 한다. 서로 생각이 다르면 끊임없이 대화해야한다. 가진 것이 편중되어 있다면 더 많이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힘 있는 자는 힘없는 자를 도와주어야 한다. 인생의 목적을 빨리 이룬 이는 그렇지 못한 이를 인내롭게 기다려 주어야 한다.
대화, 인내, 나눔, 용서, 화해 이 모든 것을 통틀어 우리는 사랑이라고 한다. 분리로 인한 인간의 불안을 해소하고 일치라는 희망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끈은 이것뿐이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1고린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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