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보고 싶어요, 아부지!

사람의 눈동자는 흰 부분과 검은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째서 신은 검은 부분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도록 만들었을까? 탈무드에 의하면 '인생은 어두운 곳을 통해서 밝은 곳을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와 비슷한 맥락의 다른 말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원불교의 종법사를 역임한 정산종사에 따르면 '천강성이라는 별이 흉방(凶方)에 서서 길방(吉方)을 비추는 것은, 곧 부족한 자리에 있어야 장차 잘될 수 있는 것을 말한 것'이라 했다. 어두운 곳에 있어야 밝은 곳을 확인할 수 있고, 흉한 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길한 자리가 확실해진다는 것이다. 하니 어둡고 흉한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 없겠다.

아버지는 골초였다. 담배 연기로 매캐한 집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아버지보다 내가 먼저 죽고 말 거라는 방정맞은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죽음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선 건 결국 아버지가 먼저였다.

그렇게 아픈 동안, 아버지는 아픔을 잊기 위해 홍콩무협영화를 섭렵했다. 아버지의 병든 시간이 동네 비디오대여점의 비디오 번호 순서대로 흘러갔다. 그런데, '어깨너머'라고 했던가. 1980년대 홍콩무협영화의 과장된 무술과 엉성한 특수효과에 아버지보다 내가 더 애정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지금도 난 화면 속에서 무사들이 날면, 기분이 좋다. 아무튼, 세상에 무협영화는 한정돼 있으니 아버지의 소소한 비디오 관람도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아버지가 무엇으로 병과 세상을 견뎠는지 나는 모른다. 식구들에게 점점 더 가혹해지는 아버지가 싫어서 관심을 끊은 탓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아버지가 서둘러 가버렸으면 하고 바랐다.

결국 아버지는 떠났다. 그리고 가난과 우울이 유산으로 남았다. 자식들에게 줄 것이 그리도 없어 고작 그런 거나 두고 가버린 아버지를 난 한동안 기억하지 않았다. 한데, 참 이상하지. 그렇게 아버지가 미웠는데, 그토록 아버지를 싫어했는데, 난 아버지 귀신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듣자 하니 누구는 생전에 부모에게 못한 죄의식이 깊어 뭔 일만 잘못되면 부모가 해코지하나 싶어 벌벌 떤다던데, 나는 죽은 아버지가 진실로 겁나지 않았다. 진짜 이상하지. 나야말로 뭘 잘했다고.

그 뻔뻔함은 내가 어미가 되고부터 더 확고해졌다. 내 새끼가 나를 미워한다 해서 내가 그 미움을 반사시킬 일이 없을 것이니만큼, 나를 낳은 아버지도 내게 그러할 것이라는 믿음이 그리 만든 것이었다. 내가 아버지와 내내 좋은 관계였다면 전혀 몰랐을 어둠의 힘이었다.

나는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의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미워할 만했고 싫어할 만했다. 그래도 이 말은 전하고 싶다. 아부지,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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