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인권결의안 북한에 물어봐
정치공세나 색깔론 넘어선 심각성
송민순 회고록 사실이면 큰 문제
그리 먼 과거도 아닌 불과 9년 전인 2007년 11월의 일이다. 당시 대한민국은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 독립된 주권을 행사했던 것이 아니라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는 당사국인 북한 정권에 먼저 물어봤던 흑역사가 있었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외교부 장관을 지냈던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에서 밝혀졌다.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한 이력을 추적해 보면, 노무현 정부 들어서서 불참(2003년)-기권(2004년)-기권(2005년)-찬성(2006년)으로 가닥을 잡다가, 2007년 들어 다시 기권으로 돌아선다. 국제사회의 기대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민이 진정 원한다면 유엔의 북한 인권결의안에 대해 우리가 자발적으로 기권으로 회귀할 수 있다. 속도도 조절하고, 시기와 방법도 조절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노무현 정부와 그 각료들이 독자적으로 결정한 게 아니라는 데 있다. 체제 유지가 아니라 적화통일이 최종 목표인 북한정권에 우리가 취할 자세를 물어본 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입장을 대변했다면 끔찍하다. 송민순의 회고록대로라면 이것은 단순한 여야 간의 정치공세거리나 색깔논쟁을 넘어선다.
당시 노 전 대통령조차 남북채널을 통해 표결 찬성에 반대한다는 북한 의견을 확인한 뒤 기권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북한에) 묻지는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했다는 증언까지 노출됐다. 통치자로서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꼈음 직한 부분이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실장과 김만복 국정원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은 송민순 외교부 장관의 강력한 표결 찬성에도 불구하고 기권을 주장했다. 다수가 기권을 주장했지만, 송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께 친필 편지까지 써 보낼 정도로 강경한 찬성 입장이었다. 합의가 안 되자 김만복 국정원장이 "남북 채널을 통해서 북한의 의견을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고, 문재인 실장이 "일단 남북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 내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과정에서 NLL 포기를 선언했다는 일과 무관치 않은 인사들이 이번에도 개입되어 불안감은 증폭된다.
이미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으로부터 '공산주의자'란 소리를 듣고 재판 중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로서는 또 하나의 논란거리에 휩싸인 것이다. 국민의 과반이 정권교체를 원하고 있고, 아직까지는 야권의 가장 강력한 대권(잠재) 후보가 문재인이어서 고민은 더 깊어진다. 더구나, 문 전 대표는 북핵에 대한 방어용 무기인 사드 배치조차 "이 정권에서 결정짓지 말고 차기 정권으로 넘겨라"고 하지 않았는가. 어디 북한은 우리에게 물어보고 핵을 쏘는가. 차기 정권까지 아직 일 년도 더 넘게 남았는데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필수인 사드 배치를 잠정 유보하게 말이다.
문재인의 안보관은 이미 NLL 포기, 사드 배치 반대, 그리고 이번 사태까지 세 차례나 위험선을 넘나들었다. 이런 회고록 폭로에 대해 11년 전 북한인권법을 최초로 발의했던 김문수 새누리당 대구 수성갑 당협위원장은 "대한민국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속국으로 전락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유승민 의원 역시 "대한민국의 찬성, 기권 여부를 북한 주민의 인권을 짓밟고 있는 북한정권에 물어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생각은 무엇이냐"며 안보관을 비판하고 나섰다.
우리 국민 누구도,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북한에 뭘 물어보고 국제사회에 그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을 원치 않는다. 야당이 이번에야말로 정권교체를 이루겠다고 원한다면 적어도 안보관은 튼튼하고 확실해야 한다. 국내 정치를 좀 죽 쑤는 것과 대북 안보관이 흔들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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