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깨나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이름 박힌 시집 한 권쯤 가져보길 소망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소망한다고 해서 그 꿈이 다 이뤄지는 건 아니다. 당장 70, 80편 습작이 있어야 하고 추천사 써줄 명망가나 서평 써줄 스승 한 분도 모셔야 하기 때문이다. 100만~200만원쯤 드는 출판비용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세상에 책으로 펼쳐내는 일은 이렇게 어렵다.
칠순의 나이에 책을 6권 낸 어르신이 있다. 한비문학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종열(70) 씨다. 60대 중반에 문학에 입문한 후 5년 만에 이뤄낸 결실이다. 늦은 나이에 대구문인협회에 적(籍)을 올렸고 자격 심사가 무척 까다롭다는 한국문인협회에도 회원으로 가입했다. 이제 취미를 넘어 직업적 문인의 반열에 올라선 이종열 시인을 만나 보았다.
◆자녀'시동생 30년 뒷바라지 후 문학 관심=이 씨의 고향은 경남 의령. 고향에서 여고를 졸업한 그는 1969년 대구로 올라왔다. 어릴 적 학업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6남매 중 둘째였던 그에게 대학은 꿈도 꾸지 못할 대상이었다.
제일모직에서 8년여 직장생활을 하고 혼기가 차자 부모님은 서둘러 그를 결혼시켰다. 남편은 8남매의 장남. 자아(自我)를 찾아가는 결혼생활을 꿈꿨지만 그건 한낱 꿈일 뿐이었다. 시동생, 자녀 뒷바라지에 정신이 없는 세월이 이어졌다.
이렇게 30여 년 세월이 흘렀다. 자녀들은 장성했고 시동생들도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이제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이 허락되자 이 씨는 원고지를 빼들었다. "그땐 문학이라는 거창한 꿈은 꾸지도 않았어요. 그저 내 마음 펼쳐놓고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시였던 거죠."
◆전국 백일장'문학지 공모서 잇단 수상=혼자 골방에서 습작 수준에 머무르던 그의 시는 어느 순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시에 어느 정도 자신이 붙자 문학지며 백일장에 응모를 시작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그저 '실력 가늠'의 의미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낭보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아람문학(계간), 한비문학에서 시, 수필 부문 신인상, 2011년에는 광주 문학세대 전국 빛고을 창작공모에서 일반부 대상을, 2013년에는 미당 서정주 사회문학상을 수상했다.
등단작가라는 타이틀이 주어지면서 이 씨의 책임의식도 커졌다. 어휘, 단락 하나에도 책임을 느끼고 표현 하나에도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시내 모 대학에 입학해 문학, 사회과학을 체계적으로 배우면서 글쓰기, 시상(詩想)을 다듬었다.
◆벌써 6권 저술 "10권 채울 것"=등단 후 원고 청탁이 들어오고 동인지에 기고를 계속하면서 작품들이 쌓여갔다. '내 이름으로 된 시집 한 권' 생각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마음뿐이었다.
이런 이 씨를 '저자'로 만들어준 건 한비문학의 김영태 대표였다. 김 대표의 지도하에 나온 책이 첫 시집 '내 마음 담은 곳'(2010년) 이었다. "활자로 또렷이 박힌 이름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릅니다. 이제까지 남의 글만 읽다가 이제 내 글을 세상에 펼쳐 놓는다는 일이 꿈만 같았습니다."
이렇게 '첫 장'을 연 책 출간은 해마다 후속작을 이어갔다. 다음 해 2집 '시간이 남긴 그림'이, 2013년에 '바다는 변치 않는다', 2014년에 '텁텁한 감꽃이 달콤한 사탕 되어', 2015년에 '3월에 내리는 햇살'을 펴냈다. 현재 이 씨의 저서는 총 6권. 2013년 펴낸 자전적 에세이 '그리움은 가슴마다'를 포함해서다. 이미 동인지 회원 중 최다급 저술을 기록하고 있지만 머잖아 10권을 채우게 될 듯하다.
에세이 2집이 완성돼 교정을 보고 있고 6집 시집도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두 권이 올해 내로 출간되면 바로 소설 작업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그동안 구상했던 스토리 얼개가 짜였기 때문이다.
"첫 시집 제목처럼 '내 마음을 담을 곳'을 찾아 그동안 원고지 칸을 메워 왔는데 그 글이 쌓여 이제 서가(書架)를 채워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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