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상의 창] 한반도, 정말 큰일 났다!

경북고·서울대. 전 뉴욕 부총영사. 전 태국 공사. 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전 우즈베키스탄 대사
경북고·서울대. 전 뉴욕 부총영사. 전 태국 공사. 전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 전 우즈베키스탄 대사

러시아 가스 연결 사업 中에 빼앗겨

푸틴, 철도 연결사업을 일본에 제의

北에 가로막혀 '섬 아닌 섬' 허송세월

대륙-해양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 못해

청천벽력이었다. '한반도, 정말 큰일 났다'라는 생각이 연신 머리를 쳤다. 러시아가 일본에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일본 철도를 연결하자고 공식 제의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남-북-러 삼국 간에 TSR과 한국종단철도(TKR)의 연결 사업만이 협의되어 왔었다. 안 그래도 남-북-러 간에 추진해왔던 '동시베리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한반도 연결사업'을 2014년 5월 중국 쪽에 빼앗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베리아횡단철도의 한반도 연결 사업마저 일본 쪽에 빼앗겨 대륙철도가 바로 일본 철도로 연결되면, 남-북-러 삼각협력 사업들은 모두 중국과 일본에 빼앗기게 되는 셈이다.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연결사업만 해도 그렇다. 동시베리아의 코빅타 가스전과 차얀다 가스전으로부터 나오는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극동 시베리아를 건너 태평양 연안, 즉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빼고, 또 거기서 북한을 거쳐 한국으로 연결하는 사업구상이 아니었던가. 한반도가 동북아 에너지 공급 중심지가 되고, 동시에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며 궁극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하리란 기대가 컸다. 그리고 일단 한국으로 온 러시아산 천연가스는 인천에서 중국 산둥반도로 다시 빼 중국 시장에 공급할 수도 있고, 남동쪽으론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다시 빼면 일본 시장에도 팔 수 있다.

그런데 상황은 급변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병합함에 따라 EU-미국이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러시아로서는 뭐든지 돈 되는 것이면 중국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러시아와 중국은 2018년부터 30년간 연 380억㎥의 천연가스(중국 연 내수량의 23% 규모)를 중국에 공급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그 규모가 약 4천억달러이니, 우리 돈으로는 410조원이 넘는다. 이 거대한 사업기회의 박탈을 생각만 해도 분해 눈물을 흘려야 마땅하지만, 우리 사회에선 이렇다 할 상실감의 표시마저도 없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일본 철도를 대륙 시베리아로 연결하는 사업을 제의하고서는 올해 12월 일본을 공식 방문할 예정이다. 벌써 양국 간에는 사업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실무협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본으로서는 호시탐탐 시베리아로의 직접 진출을 도모해 왔었는데, 러시아 쪽에서 먼저 대륙연결 철도사업을 제의해 왔으니 호박이 덩굴째 떨어진 격이라 하겠다.

돌이켜 보니 시베리아철도의 한반도 연결 사업은 러시아로서는 우리를 엄청 생각해줘서 제의했던 사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 철도를 한반도로 연결하는 사업에는 북한의 정치적 변수 외에는 그리 어려운 점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 보니 러시아 철도를 일본 철도와 연결하는 사업도 효과에 비해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대륙에서 사할린으로 나가는 것은 불과 7㎞ 타타르해협만 지나면 되고, 사할린 남단에서 홋카이도까지는 불과 42㎞ 소야해협만 건너면 일본 본토가 된다. 소야해협을 터널로 가로지른다고 하더라도 1990년 완공한 50㎞ 도버해협의 터널보다 한참 짧다. 또 일본은 일찌감치 1988년에 홋카이도와 본토를 연결하는 54㎞ 세이칸터널을 뚫어 쓰가루해협을 가로질러 놓고 있다. 이제 도쿄에서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유럽, 영국까지 달려가는 철도여행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중국과 일본에 빼앗긴 이 2개의 대륙사업이 21, 22세기 인류 먹거리 사업들, 즉 지상 최대의 사업이 될 북극권 개발 사업이나 베링해를 건너는 아시아-아메리카 대륙연결 도로 및 철도 사업 등의 참여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반도가 중국과 일본보다는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러시아엔 훨씬 편안했음을 감안하면 중국과 일본에 가스 파이프라인과 철도 사업을 빼앗긴 것은 순전히 우리 탓이라 할 것이다. 북한에 가로막혀 대륙에는 제대로 발도 못 붙이며 섬 아닌 섬에 갇혀 허송세월하는 동안, 또 말로만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야무지게 담당할 그날을 화려하게 기다리는 동안, 우리 주변의 강대국들은 쉴 새 없이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반도, 정말 큰일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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