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배터리를 재충전하자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서인지 차가 노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침에 출근하려는데 차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었다. 짜증보다는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 나이는 올해로 지천명(知天命), 오십이다. 하늘의 뜻을 알기는커녕 아직도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감정 정리를 못하는 철부지인데, 얼마 전부터 눈에 노안도 오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동료들도 다 비슷한 상황인 듯한데, 딱히 서로 고민을 공유할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옛날 같으면 인생을 돌아보며 마무리 준비를 했던 50대 중년들이 지금은 사회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느끼고 있다.

얼마 전 '100세 인생'이란 노래가 유행했다. 그만큼 평균수명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주변을 봐도 70세 고희(古稀)는 아직 청년(?)이다. 이들은 한국전쟁 후 짧은 기간 동안 정치, 경제, 문화 등에서 놀라운 성장을 견인한 세대지만, 젊은 시절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살아왔기에 정작 지금은 뭘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라고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은 취직, 연애, 결혼을 포기하는 '삼포세대'로 불리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 중년들은 두 세대(성장 견인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끼어 더 불쌍한 것 같다.

얼마 전 선배 한 분이 들려준 이야기다. 오랜만에 다 큰 외동아들과 치맥(치킨과 맥주)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눌 심산으로 퇴근 후 집으로 급히 들어갔다. 거실에 음식을 펼쳐 놓고 아들을 불렀는데, 아들이 하는 말 "아빠 치킨 몇 조각 드실 거예요?"였다. 선배는 얼떨결에 "어, 한두 조각 먹지"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말이 끝나자마자 아들은 치킨 두 조각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자기 방으로 들고 가더라는 얘기였다.

또 요즘 집집마다 자녀가 하나인 경우가 많다 보니, 자녀의 대학 교육 및 취업 준비는 기본이고 결혼부터 손주 양육까지 모두 부모들이 신경 써야 할 판이다. 이 와중에 우리 중년들은 점점 행복한 노후를 사는 방법을 잃어가고 있다. 그 결과는 우울증이나 허무감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활력 거리를 찾아야 한다. "열심히 일한 그대, 떠나라" 라는 어느 광고 카피처럼, "힘내라 중년! 그동안 고생했다"고 외칠 필요가 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직장인밴드를 하고 있다. 연습하는 날인 토요일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모른다. 한 주의 스트레스가 수다도 떨고 합주도 하다 보면 날아가고, 몸과 마음 모두 젊어지는 것을 느낀다.

남들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돈이 많이 드는 것을 찾을 필요도 없다. 즐거운 일을 위해 다시 한 번 배터리를 충전하여 열심히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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