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難局)도 이런 난국이 없다. '총체적 난국'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북한 핵'미사일을 비롯해 정치'경제'사회 곳곳에서 대한민국이 위험 지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천 길 벼랑 끝에 선 아찔한 상황이지만 탈출로가 전혀 안 보인다. 위험을 직시하고 헤쳐 나갈 지도자'집단이 없는 게 더욱 문제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으로 세상이 시끄럽더니 작금엔 회고록 하나가 나라를 흔들고 있다. '2007년 유엔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서 노무현정부가 북한의 뜻을 사전에 타진하고 기권했다'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을 놓고 여야가 팩트(Fact) 확인은 뒷전인 채 정쟁을 벌이고 있다. 여당은 "주권 포기"라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공격하고, 야당은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을 덮으려 여당이 색깔론 공세를 편다며 반격하고 있다.
이 싸움에서 밀리면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필패(必敗)하리란 생각을 하고 있기에 여야는 사생결단이다. 소모적 정쟁을 일삼는 정치인들의 머릿속에 '나라'라는 존재가 들어 있는가 의심스럽다. 송 전 장관 회고록 제목 '빙하는 움직인다'에 빗대어 얘기하면 한국이라는 배가 빙하에 부딪혀 대서양에 침몰한 타이타닉 꼴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서해에서 우리 주권은 실종됐다. 중국 어선이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까지 침범, 수산 자원을 노략질하는데도 우리 정부는 제대로 대응을 못 했다. 우리에겐 왜 수시 푸지아투티가 없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인도네시아 해양수산부 장관인 수시는 자국 어장을 침범한 외국 선박들을 폭파, 침몰시킨 주인공이다. 2014년 불법 조업에 대한 강경 대응 기조를 세운 인도네시아는 현재까지 중국 배를 포함해 외국 어선 240여 척을 가라앉혔다. 이순신 장군이 주권이 실종된 서해를 내려본다면 통곡할 일이다.
간당간당하던 경제도 추락 중이다. 우리 경제의 기함(旗艦'flag ship)인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사태로 휘청거리고 있다. 현대차 등 다른 대기업들도 고전하고 있다. 수출 급감, 가계 부채 문제, 고용 불안, 조선'해양'철강'석유화학 등 주력 업종들의 위기'''. 호재는 없고 악재만 수두룩하다. 우리가 따라잡은 것으로 봤던 미국'일본은 저만치 달아나고, 낮춰봤던 중국엔 뒷덜미를 잡혀 옴짝달싹하기 어렵다.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 원인도 이 같은 상황을 무리해서라도 넘어서려는 조급증에서 찾을 수 있다.
총체적 난국이 빚어진 까닭은 신뢰 붕괴 탓이다. 위기 타개 주역이 돼야 할 박근혜 대통령은 미르'K스포츠재단, 우병우, 최순실 등 줄 이은 의혹에 발목이 잡혀 국민 신뢰를 잃었다. 대통령 말이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한 소리로 들릴 뿐이다. 이래서야 국정 추진 동력이 생길 수 없다. 이전투구에 열 올리는 국회의원들이 국민 신뢰를 잃은 지는 벌써 오래됐다.
가족 5명이 사법 처리 신세가 된 롯데, 늑장 공시로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친 한미약품 사태에서 확인했듯 재벌'기업인들은 신뢰를 저버리는 일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판사'검사'변호사 등 법조 3륜 비리가 이어지면서 사법 정의에 대한 신뢰도 곤두박질쳤다. 1980년대 한 드라마에 등장한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놈)란 일본말이 아직 회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통계청이 국가지표체계에 공개한 자료를 보면 국민의 국가 기관에 대한 불신은 바닥 수준이다. 청와대엔 국민 둘 중 한 사람(52.2%)만 겨우 신뢰를 보냈다. 국회는 국민 10명 중 3명도 신뢰하지 않는 부동의 꼴찌였다. 2014년 조사가 이럴진대 지금은 그 수치가 더 형편없이 떨어졌을 게 분명하다.
지지도 고공 행진을 하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에 대해 "필리핀 국민 대다수가 대통령 업무 수행에 만족하고 신뢰한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게 현지 언론 분석이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그것을 통해 국민 신뢰를 얻는다는 점에서 두테르테는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우리 지도자들에게 한 수 가르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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