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자유롭지 않은 나라, 미국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경북대(국문과) 졸업. 창조문예 시 부문 등단

지난 14일, 미국 법원은 샌디훅초등학교 총기 참사 유족들이 총을 만든 회사에 제기한 소송이 성립할 수 없다는 각하 판결을 내렸다. 미국 총기 참사 중 가장 최악의 기록을 남긴 샌디훅초등학교 사건은 한인 피해자는 없었지만, 총기 난사로 인해 어린 초등학생과 교사 26명이 희생당하는 끔찍한 참극이었다.

그 당시 남편의 직장이 샌디훅초등학교가 있는 동네에 위치해 있었던 관계로, 남편의 전화기는 그날부터 미국 전역에서 걸려오는 문의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응급 상황이라 어느 곳에 연락을 취할지 모르던 사회단체 또는 종교단체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전화를 해서 도울 것이 있는지 물었다. 어떤 분은 전화기를 붙잡고 울기도 하고, 어떤 분은 자신의 아이를 잃어버린 아픈 과거사를 들려주며 어린이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남편은 임시 상담자가 되었고, 모인 조의금과 위문품을 들고 샌디훅 재난본부에 전달해 주었다.

그때는 미국 국민 전체가 울었다. 무고한 어린 생명과 그들을 지키다가 쓰러진 교사들의 넋을 기리며, 모두가 더 이상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기 소유를 지지하던 몇몇 의원들까지 종전의 입장을 바꾸어 총기를 철저히 규제하자는 소신 발언을 이어갔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어린 희생자들을 떠올리며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울먹였다.

이후 2014년에 샌디훅초등학교 유족들은 범인이 사용한 소총 AR-15를 제조한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총기 난사에 자주 사용되는 이 소총이 군사용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일반인에게 판매한 책임을 묻는 소송이었다. 위기에 처한 총기제조사는 '무기합법거래보호법'을 꺼내들고 소송 제기에 반발했다. 이 법은 총기 사건에 대한 소송 남발 방지를 위해 총기 생산자나 판매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총기 회사에 특별혜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주, 법원은 무기제조사 편의 손을 들어 소송을 각하해 버림으로써 총기 규제에 대해 기대를 모았던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주었다.

왜 미국은 연일 곳곳에서 총성이 터지는데도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여러 이유들이 있지만, 가장 실제적인 이유는 총기 판매를 위해 엄청난 로비를 하고 있는 전국총기협회(National Rifle Association)가 미국 정치인들의 입을 막아버렸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초보 사격자에게 사격술을 지도해 주는 목적으로 설립된 이 단체가 지금은 미국의 정치 경제를 휘두르는 거대한 배후 세력으로 성장하여, 미국 선거판을 좌지우지하고, 정치인들의 정치 생명을 거머쥐고 있으니, 그 세력에 맞서서 총기 규제에 대한 발언을 하기란 쉽지 않다.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를 부르짖는 나라, 미국이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하다.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권력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생긴 미국의 슬픈 사회상이다. 원래 로비(lobby)는 단어 뜻 그대로 로비처럼 열린 공간인 의원 휴게실에서 누가 어떤 얘기를 하는지 다 아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행해졌다. 그리고 정책 입안에 대해 열띤 토론을 펼치며 공익을 위해 노력하는 좋은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뜻이 폐쇄적이고 음성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적 이익만을 위하여 이루어지는 만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요즘 우리나라도 미국의 총기협회와 닮은 여러 가지 불법적 로비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정계의 뒷마당이 아닌 앞마당에서 투명한 로비가 이루어지는 정치 풍토를 모색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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