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닥터 스트레인지

초자연적 마법으로 惡과 싸우는 '슈퍼히어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천재 외과 의사

절망 이겨낸 후 '善의 수호자'로 나서

마법·영혼 등 동양적 요소 전면 배치

현실·초현실 넘나드는 판타지 완성

'엑스맨' '디시'(DC)와 더불어 3대 히어로 영화 시리즈를 구성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마블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영화, 만화, 드라마를 관통하는 공통 세계관을 일컫는다. 매년 등장하는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들이 서로 복잡한 관계를 맺으며 얽혀 있어 이걸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화제성 높은 스타들이 새로운 슈퍼히어로 캐릭터를 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 그리고 슈퍼히어로 영화가 젊은 관객들을 중심으로 세계 영화계를 뒤흔들고 있는 현상을 보니, 이 장르를 만만하게 보기 어렵게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시간적으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가운데 위치하는 영화다. 영화는 승승장구의 길을 걷던 오만방자한 인물이 갑자기 찾아온 고통의 순간을 통해 성장하고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전형적인 신화적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본명은 스티븐 빈센트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그는 한때 잘나가는 천재 외과 의사였으나, 불의의 교통사고로 손을 크게 다쳐 더 이상 메스를 들 수 없는 처지가 되고 절망에 빠진다. 그는 치유를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간 네팔에서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을 만나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존재함을 알게 된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에인션트 원의 제자가 되어 현실조작, 유체이탈, 차원이동, 염력 등 놀랄 만한 능력을 얻게 되고, 지구 최강의 슈퍼히어로로 거듭난다.

영국 드라마 '셜록'으로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캐릭터를 깐깐함과 블랙유머를 갖춘 그만의 특별한 인물로 창조하였다. 추후 속편들이 제작될 것임을 예감케 하는 이 작품은 시리즈의 기원담으로서 기능한다. 영화는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 같은 작품성 있는 SF 블록버스터가 선보인 다차원적인 공간 표현 방식을 가져와, 현실과 초현실 세계를 넘나드는 인물들의 세계를 눈앞에 환상적으로 펼쳐 보인다.

그에 비해 스토리는 어둡다. 비탄의 감정이 분노로 변하게 되어 세상을 혼란으로 몰아넣고자 하는 악당들이 있고, 이들이 활개치는 세상을 보호하려는 선한 의지를 가진 닥터 스트레인지가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초자연적인 마법으로 악당과 맞서 화려한 마법 액션을 선보인다.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 영화가 마법과 영혼 등 신비로운 소재를 가진 판타지 단계로 진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죽음과 영혼, 다차원적 공간과 마법의 세계 등 동양적인 요소들이 전면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그간 슈퍼히어로 영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이색적인 조합을 통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영화에서는 명확하게 과거를 드러내지 않지만, 덴마크 출신 연기파 배우 매즈 미켈슨이 연기하는 악당 케실리우스가 극도의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악의 화신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같은 무게의 절망에서 케실리우스는 악당이 되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선한 주인공이 되는 과정은, 누군가의 선택이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촬영 전에 '화이트 워싱'(white washing) 논란으로 뜨거웠다. 원작 캐릭터나 실존 인물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원작의 소수인종 캐릭터를 백인 배우가 연기하는 경우를 화이트워싱이라고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에이션트 원은 원래 티베트인 남성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틸다 스윈튼이라는 하얀 피부를 가진 백인 여성이 이 역할을 맡게 되자 논란이 가중되었던 것이다. 영화 스토리상 네팔에서 아지트를 운영하는, 동양무술과 마법의 스승 에이션트 원이 백인이라는 설정은 꽤 어색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중국 시장을 크게 고려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일이고, 원작의 티베트인 설정은 중국 관객들에게 위험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가뜩이나 종교나 오컬트 소재의 영화 개봉이 까다로운 중국이기에 제작진은 신비로운 이미지를 가진 틸다 스윈튼을 통해 국적과 성별, 나이까지 모호하게 만들어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했을 것이다. 영화는 신비로운 판타지 이미지를 얻었지만, 지난 3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부터 최근 영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까지 이어지던 할리우드의 인종 차별 논란을 연장시키고 말았다. 

화려하면서도 기이한 시각 효과와 슈퍼히어로 탄생의 신비로운 기원담 너머로 자본과 시장, 국가를 둘러싼 헤게모니 관계들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치열하게 쟁투를 벌이고 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