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사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 와중에 금융권에서는 또 다른 논란거리가 잉태 중이다. 정부가 정책금융 기능을 대대적으로 재편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이미 지난달 관련 용역을 의뢰한 데 이어 이르면 내년 초 최종 개편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박근혜정부가 갑자기 이 문제에 대해 속도를 내고 있는 데에는 추락하는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돼 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사태로 휘청거리고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는데다 수출 급감, 가계부채 문제, 고용 불안, 조선'해양·철강·석유화학 등 주력 업종들도 위기다. 나머지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사정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정책금융 수요가 그만큼 늘고 있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를 계기로 정책금융 집행이 비효율적이고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는 문제다. 경우에 따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를 비롯해 산업기술진흥원·인터넷진흥원·정보화진흥원·데이터진흥원 등 40여 곳이 넘는 기관들이 통폐합이라는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지역 경제계 입장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오래전부터 거론돼 왔던 신용보증기금(신보)과 기술보증기금(기보) 통합 문제다. 신보와 기보는 중소기업·벤처기업을 대상으로 보증 업무를 하는 정책금융기관으로 업무 중복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그간 금융권 일각에서는 '유사한 보증 업무를 두 개의 기관으로 나눠서 운영하면 업무 중복과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업무 재조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런 이유에서 지난 2008년 금융 당국은 비슷한 업무를 맡고 있는 기보와 신보의 통합을 추진했다가 무산된 바 있다. 당시 부산지역 여당 의원들이 반발하며 통합 저지에 나섰기 때문이다. 기보는 부산에 본사를 두고 있고 신보는 대구 이전이 예정돼 있었던 터였다. 부산은 기보를 대구에 내줄 경우 부산이 추진 중인 '글로벌 금융도시'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반대로 지역 정치권에서는 신보를 중심으로 한 기보의 통합을 추진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신보가 대구로 오는 마당에 기보와의 통합은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였다. 그러나 부산의 저항과 지역 간 갈등으로 비칠 경우 신보마저 대구 이전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 통합 목소리가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8년이 지난 지금 대구에는 전국 규모 금융기관으로는 유일하게 신보가 터를 잡고 있고 지역 금융의 맏형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만약 '신보와 기보의 통합 논의가 다시 시작된다'면 대구부산 간 지역 갈등도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부산 경우 한국거래소 등 전국 규모 금융기관들이 모여 있는데다 지난해부터는 본격적인 금융도시를 표방하고 '그랜드 플랜'을 짜고 하나둘씩 실행에 나서고 있다. 지역민 입장에서는 자칫, 애써 모셔온(?) 신보를 빼앗길 수 있다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금융권 안팎에서 들려오는 '정책금융기관을 모두 통합한 뒤 지주회사를 만드는 방안'도 신경이 쓰인다. 통합지주회사를 어디에 둘지를 두고 지역 간 갈등도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힘센 이웃이 있으면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이 생긴다. 사이가 좋을 때야 그럭저럭 친구로 지낼 수 있지만 갈등이 생기면 억울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다. 부산과 이웃한 대구도 마찬가지다. 대구는 위천국가산업단지 무산, 삼성자동차 부산 이전, 낙동강 수변지역 개발 반대, 두 번의 신공항 무산 등으로 부산에 대해 피해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굵직한 사안만 꼽아봐도 5번이나 발목이 잡힌 셈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히딩크가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5대 0으로 졌다. 오대영이란 별명이 붙은 히딩크. 그러나 이 패배를 거울삼아 오히려 월드컵 4강이란 신화를 창조했다. 승리에 대한 준비와 해법, 그리고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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