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과 사람] 양심에 털난 자 식별법? "공감제로 확인해 보세요"

내 옆에는 왜 양심 없는 사람들이 많을까?

최환석 지음/태인문화사 펴냄

저자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최환석(47)은 20년이 넘는 동안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진료하며, 또 그런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입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의문을 갖게 됐다. 흡사 사기꾼을 연상케 하는 양심 없는 가해자들의 공통된 특성은, 또 그런 자들에게 속은 피해자들의 공통분모는 무엇인지.

저자는 자신의 임상 경험 및 연구에다 기존 연구들까지 참고해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 아예 없는 공감제로형 인간(이하 '공감제로')들의 특성 12가지를 다양한 사례를 들어 제시한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착해…쉽게 '먹잇감' 당해

피해자들도 닮은 모습을 갖고 있다. 보통 공감제로들로부터 한 번만 당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당한다. 저자가 만난 피해자들은 대부분 착하고 이타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 공감제로들이 쉽게 먹잇감으로 노리고, 결국 거듭 당하고 만다는 것이다.

"인격장애자나 사이코패스라고 하면, 우리는 그들이 일으키는 납치나 살인 사건을 떠올리죠. 사실 이런 피해를 주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자기 이익을 위해 두 얼굴을 가지고 행동하며 거짓말을 잘도 하는 '야누스' 같은 사람, 쉽게 변절하고 배신하는 '카멜레온' 같은 사람, 그러면서 남의 것을 가로채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사람, 즉 공감제로는 꽤 흔하게 접하게 되죠. 전체 인구의 4% 정도, 즉 우리 주변 25명 중 1명꼴입니다."

◆나를 함부로 괴롭힐 수 없음을 자각하게 해야

살면서 공감제로들을 단번에 알아보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들이 본색을 드러내거나 들키기 전에는 도통 알 수 없다. 저자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단순히 양심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려워요. 그들은 참 쉽게 또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양심은 공감능력이라는 바탕 위에 나타나지요. 그 사람의 공감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즉 역지사지로 공감을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면 됩니다.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 즉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고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는 것이, 말과 행동에서 바로 드러나지요."

이런 공감제로들을 가급적 빨리 알아보고 피해를 입기 전에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바로 그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공감제로의 괴롭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고통과 상처를 감수하며 사는 수많은 피해자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만약 공감제로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있다면, 그들의 기술과 술책에 흔들리지 않는 심리적 우위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그러면서 나를 함부로 할 수 없음을 공감제로들이 자각하게 만들어, 나를 착취할 의도 및 행동을 아예 차단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귀가 얇다거나 첫인상 즉 선입관에 쉽게 매몰되는 등 공감제로들의 먹잇감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면, 조금 고쳐볼 일이다. 직관 능력을 날카롭게 다듬는 것이 중요하다. 또 공감제로가 속한 단체나 조직의 규율로 압박하는 등 주변 다수의 힘을 빌릴 필요도 있다.

공감제로에게 그간 당한 게 많다고 굳이 힘들여 복수할 필요는 없다. 공감제로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면을 들켜버리고 결국 나쁜 평판을 얻게 된다. 저자는 노자(老子)가 한 이 말을 언급한다. '강가에 앉아 있노라면, 머지않아 그의 시체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게 되리라.'

◆유전자 vs 환경, 공감제로 유발 요인은?

책에서 또한 흥미를 끄는 부분은 공감제로를 만드는 요인이 몸속 유전자인지, 태어나고 자란 환경인지에 대한 논의다. 저자는 이렇게 결론 내린다. "나쁜 유전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쁜 사회는 있습니다." 어떤 유전자는 반사회성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등의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이를 잘 해석해야 한다. "유전자는 결정하는 존재가 아니라 환경에 반응하는 존재입니다." 그 유전자가 나쁜 환경에 놓일 경우 공감제로를 만들 수 있지만, 좋은 환경에 놓일 경우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타고난 사이코패스는 분명 있다. 그런데 건강한 사회에서는 사이코패스가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행동으로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역사 속에 있어왔다. 그래서 저자는 요즘 돈이 너무 중시되고 양극화 구도로 변하며 점점 '사이코패스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를 염려한다. 공감제로들이 야누스로, 카멜레온으로, 흡혈귀로 활개를 칠 수 있는 환경이 점점 확대되고 있어서다. 그러니 공감제로들에 대한 개인의 대처는 더욱 중요해진다. 저자가 이 책을 펴낸 까닭이다.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생뚱맞은 질문을 하나 했다. 연거푸 속이는 일부 정치인과, 연거푸 당하는 유권자(시민)의 구도도 혹시 이 책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 "흔히들 선거에서 '당(정당)을 보지 말고 사람(입후보자)을 보라'고 얘기하는데요. 저는 이견을 달고 싶습니다. 사람을 보기 전에 당을 보라고요. 공감제로들은 겉만 보고는 알아챌 수 없지요. 오히려 친절하고 예의 바르고 말주변도 좋은 첫인상이 그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입후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유권자들은 대부분 입후보자의 이미지만 접하게 됩니다. 가까이서 그들의 속내를 면밀하게 파악할 기회를 얻는 유권자는 극소수죠. 그러니 입후보자가 속한 정당의 지향과 정책이 더 정확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입후보자는 자신이 속한 정당의 큰 틀을 거스를 수 없는 처지에 있기도 하고요."

272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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