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6월 집권 3년 차를 맞은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은 2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재선은 불가능했다. 고민하던 카터는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한 방을 준비한다.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참모들을 그러모았다. 연설을 통해 지지율을 높일 계획이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카터는 국민을 상대로 회심의 연설을 한다.
"미국은 전대미문의 위기에 처해 있다. 국민들이 정부는 물론 종교단체, 언론, 교육기관 등 모두를 불신하고 있다. 이는 케네디 암살 이후 워터게이트까지 과거의 잘못된 유산 때문이다. 정부는 특권층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연설 후 되레 국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는 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카터 집권 후 실업률과 물가는 치솟아 경제난은 가중되고, 소련과의 안보 위기는 점증하는 상황이었다. 국민들은 '내 탓이오'란 자기고백을 듣고 싶었는데 '네 탓이오'만 하다 끝났으니 그럴 만했다. 카터는 재선에 실패했다.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진 것은 집권 후 처음이다. 대통령의 사과는 카터의 연설을 연상시킨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만큼 잘만 하면 반전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다. 국민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명확하다. "이 모든 국정혼란이 대통령인 나의 책임이다" 해법으로 자신을 아바타처럼 만들고 농락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최 씨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 의지를 밝혀야 했고, 우병우 민정수석을 비롯한 인의 장막을 제거하겠다는 약속이 뒤따랐어야 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역시 번지수를 헛짚었다. 지금 국민들은 '그동안 당신은 무얼 했느냐'고 묻고 있고, '#그런데 최순실은?'을 외치고 있다.
미국에서 늘 '역대 최고의 미국 대통령' 톱10 안에 드는 해리 트루먼은 재임기간 백악관 집무실에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결정한다'(The Buck Stops Here)는 명패를 걸어 두고 좌우명으로 삼았다. 여기서 트루먼이 읊은 책임이 '비선 실세'나 '몰염치한 수석'에 대한 책임은 아니다. 대통령은 국민에 대해서만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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