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정호승의 '부치지 않은 편지'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 꽃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되리니 /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되리니 / 산을 입에 물고 나는 / 눈물의 작은 새여 /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정호승의 '부치지 않은 편지' 전문)
나와 내가 싸우면서 나와 난 언제나 힘들다. 갑자기 김광석의 노래가 귀에서 맴돈다. '사랑과 죽음이 자유를 만나 언 강 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울컥했다. 언젠가 친구가 그랬다. '니가 서 있는 모습이 겨울 같다'고. 그 말이 너무 좋아 난 그날 밤새도록 일기장에다 '난 겨울 같다'라고만 썼다. 조금씩 시간이 흘러도 밤새도록 일기장에 겨울 같다고 쓰던 감성이 줄어들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 감성을 이 세상을 보듬어가는 진정한 에너지로 활용하지 못했다. 눈물이 얼마나 큰 에너지인가를 알지 못했다. 아픔을 느끼고 살았지만 아픔의 내면을 바라보지 못했다. 슬픔을 보고 살았지만 그 슬픔의 바닥과 손잡지 못했다. 바닥을 보고 살았지만 그 바닥의 본질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울과 바람과 아픔과 슬픔과 바닥을 지닌 사람을 만났다. 그의 미소는 아름다웠다. 언제나 그의 시선은 낮은 곳을 향했고 그리고 따뜻했다. 하지만 불의를 향해 던지는 그의 언어는 단호했다. 자신을 흔들던 수없는 바람에 쓰러지긴 했어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바닥을 보고 있었다. 그가 보는 바닥에는 지금 아픈 사람, 지금 슬픈 사람들이 낮은 몸짓으로 살고 있었다. 꽃이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기는 어렵다지만 그는 한 송이의 꽃을 피우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날, 그의 마지막 모습은 절박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시련의 벽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어렵게 열었지만 그 벽 너머에는 오히려 더 두꺼운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에게 벽 너머의 벽은 암담함이란 의미로 다가왔을 게다. 그를 가로막은 그 벽이 눈에 보이는 벽이었다면 부수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소문'이라는 옷을 입은 벽은 더욱 무서운 존재로 그의 삶을 억압했다. 소문은 대체로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소문은 존재하는 사실의 왜곡과 존재하지 않는 사실의 창조를 낳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실의 왜곡과 창조 속에서 그는 부끄럽고 외로웠다. 결국 그는 시대의 새벽길을 홀로 걷다가 언 강바람 속으로, 세찬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제발 그대, 잘 가라.
이제 우리가 남았다. 눈물과 사랑만을 남기고 그는 다른 세상으로 사라졌다. 수많은 왜곡과 창조도 존재의 사라짐과 더불어 신기하게 사라졌다. 소문을 만든 자도, 소문을 재생산한 자도, 소문을 들은 자도 시간과 더불어 소문처럼 사라져갔다. 하지만 그의 사라짐으로 인해 우린 현재 우리의 모습을 깨달았다. 비겁하게 욕망의 하수인이 되어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그의 눈물은 이제 곧 강물이 되고, 노래가 되어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날 게다.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이제 되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그대 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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