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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지극히 인간적인 질투

김진규
김진규

마음에겐 자신만의 이유가 있다. 지극히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것이 거의 무의식에 가깝고, 완전히 독자적이고 개별적이어서 아주 고집스러우며, 따라서 이성이나 상식 등 합리적인 사고로는 풀이할 수 없는 그런 이유들 말이다. 때로는 그 이유들이 마음을 들쑤셔 사람을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밀어뜨리기도 하는데, 가장 훌륭한 예가 바로 질투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보면 질투 때문에 제 아내를 죽이는 사내가 나온다.

프랑스의 철학자 리트레는 질투를 이렇게 정의했다. '사랑에서 시작되어, 사랑하는 이가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야기되는 감정'이라고 말이다. 물론 이성은 최선을 다해 타이른다. 사랑의 굳건함과 신실함을 믿으라고 말이다.

하지만 감정은 결코 부탁이나 명령을 받아주는 법이 없다. 해서 어떤 감정 하나만 집중해서 키우기도 하고, 강력해진 그 감정으로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차단해 버리며, 대립하는 사실은 아예 접근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 감정 하나만 남겨둔다. 그래서 질투는 무럭무럭 자라, 결국 온갖 부정적인 열매들을 주렁주렁 매달기 시작한다. 그 중의 하나가 '배신'이다.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옵션으로 매단.

뒤통수뼈는 머리의 뒤쪽 아랫부분을 감싸는 뼈다. 돌출된 그 부분을 단단한 물체로 가격하면 뇌진탕을 일으키게 되는데, 뇌진탕은 뇌가 놀랐다고 하는 대수롭지 않은 수준부터 뇌출혈을 동반하는 고약한 정도까지 그 증세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종종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는 점에서 뒤통수를 때리는 행위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신의 행위로 인해 어떤 범죄적인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 예견하였음에도 그 행위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것을 미필적 고의라 하지 않는가. 그러니 배신을 일컬어 뒤통수를 때린다고 한 비유는 지당하다. 문자조차도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배반할 배(北)와 몸 육(肉)이 섞인 '배'(背)에는 엄연히 '죽다'의 뜻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투는 드러내놓고 해결하기엔 너무도 '쪽팔리는' 문제다. 프랑스의 또 다른 철학자 롤랑 바르트도 이렇게 거들었다. '당신이 질투한다면 네 번 괴로워하는 셈이다. 질투하기 때문에 괴로워하며, 질투한다는 사실로 자신을 비난하느라 괴로워하며, 당신의 질투가 그 사람을 아프게 할까 봐 괴로워하며, 통속적인 것의 노예가 된 자신에 대해 괴로워한다. 즉 당신 자신이 배타적인, 공격적인, 미치광이 같은, 상투적인 사람이라는 데 대해 괴로워하는 것이다'라고. 똑똑한 양반 같으니. 아무튼, 그래서 나도 가끔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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