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과 사람] '나라가 크면 역사도 커져야' 펴낸 박진용 영남대 겸임교수

"한국사 국정 교과서, 정답은 아니지만 현 상황에선 불가피"

지은이 박진용 교수는 \
지은이 박진용 교수는 \"교과서 국정화는 옳은 길이 아니지만, 우리 역사에 대해 증오와 혐오의 감정을 주입하는 현행 검인정 교과서는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라가 크면 역사(歷史)도 커져야/박진용 지음/매일 P&I 펴냄. 72쪽, 4천원.
나라가 크면 역사(歷史)도 커져야/박진용 지음/매일 P&I 펴냄. 72쪽, 4천원.
교육부가 발표한 중
교육부가 발표한 중'고등학교 국정 교과서 검토본.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와 국정 교과서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해 '역사 의병, 한국사를 말한다'를 통해 2014년 발간한 고교 한국사 검인정 교과서 10종과 2010년 발간한 국정 교과서 1종을 비교, 분석한 책을 펴냈던 박진용 영남대 겸임교수가 '나라가 크면 역사도 커져야'(매일 P&I)라는 72쪽짜리 작은 책을 펴냈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역사 교육의 소비자 입장에서,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유감을 정리하고, 새 국정 교과서에 대해서는 장단점을 따지고 있다. 향후 국정-검정 교과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덧붙였다.

◆국정 교과서가 바람직한 방안은 아냐

지난해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 8종을 세세하게 분석하고 조목조목 따졌던 박 교수는 "나는 국정 교과서가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역사를 한 가지 해석으로 가르치려는 것은 기본적으로 옳지 않다. 그러나 현행 검인정 교과서를 사용하는 것만은 끝까지 반대한다. 검인정 교과서 8종 중 7종이 문제 교과서다. 이 책들로 우리 청소년들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나머지 1종(교학사)만이 교과서로 쓸 만하나 보급률은 0.1%도 안 된다. 전교조와 좌파 시민단체들이 물리적 힘을 동원해 각 학교를 찾아다니며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99.9% 이상의 학생들이 부적합한 교과서로 한국사를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좌편향 교과서에 대한 법정관리'로 규정한다.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될 상황이기에, 비록 국정화가 결코 올바른 선택이 아니지만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역사관리 능력을 상실한 역사학계와 교과서 시장을 둘러싸고 물리력을 행사한 집단이 자초한 일"이라며 "이 책들은 우리 헌법의 가치(자유주의, 민주주의, 시장주의)를 부정하는 책"이라고 규정했다.

◆"검인정 교과서 보완 정도로는 부족"

"국정 교과서로 공연한 논란을 만들지 말고, 검인정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할 수 있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검정을 강화해서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집단적 움직임, 집단적 사고가 너무 강해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답했다.

그는 교육부가 이번에 나온 국정 교과서에 대해 찬반 토론회를 열고자 하지만 찬성 입장에서 토론해 줄 교수가 없다고 말했다. 현대사 전공 교수들이 국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거나 토론회에 찬성 입장을 나타내기만 하면 '집단 린치'를 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학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교수들은 "국정 교과서 집필에 참여할 경우 압박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 교수들 사이에서는 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한다는 발상 자체에 반대하는 경향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고 말한다.

◆검인정 교과서, 비판과 부정평가만 가득

지은이는 "현행 검인정 교과서는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지나치게 나열돼 있다"고 평가한다. 그 결과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 아직 판단력이 성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역사를 구질구질하고 혐오스럽게 인식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북한에 대해서는 비판을 되도록 삼가고, 일제강점기 김일성의 보천보(普天堡) 습격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중 있게 기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북한의 6'25 침공, 학살, 남북분단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않는 책도 있다. 한국 대통령 중에는 얼굴 사진이 한 장도 등장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김정일 사진은 3장이나 쓰고 있는 교과서도 있다.

전직 매일신문 기자이기도 한 박진용 교수는 "김정일 시찰 사진 등을 3장이나 싣는다는 것은 검인정 교과서 집필진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검인정 교과서들은 세계에서도 악명 높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나, 민간인 탄압과 굶주림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나쁜 이야기는 좋은 이야기보다 전파력 커

지은이는 "마케팅에 '3대 33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긍정적인 평가나 칭찬하는 말은 일반적으로 3사람에게 전파되지만, 부정적인 평가, 비난하는 말은 33명에게 전파된다는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들의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맹렬한 비난이 젊은이들에게 상상 이상의 나쁜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그는 부정적인 말, 선동적인 말, 거짓을 사실처럼 퍼뜨려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이 비용 대비 효과가 굉장하기 때문에 모리배, 선동가, 사기꾼들이 그런 수법을 쓴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터넷이나 시중에 떠도는 말들을 보라. 좋은 말이 대체 몇 개나 되나? 대부분 부정적인 말, 근거 없는 의혹과 비판이다. 심지어 국회의원이란 사람들도 일단 마구 내지르고 본다. 그런 말은 매우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진다. 나중에 거짓임이 드러나더라도 진실은 전파력이 약해 금방 소멸되고 만다"며 부정적인 말들의 파괴력이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국정 교과서, 아직 부족하나 첫 단추로는 괜찮아"

박 교수는 "현재 일고 있는 논란의 핵심은 검인정이냐 국정이냐, 하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고 잘라 말한다. 국가의 정신과 가치를 제대로 가르치느냐, 못 가르치느냐,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 국정 교과서는 검인정 교과서의 여러 문제들을 대강이라도 해소시키고 있다고 그는 평가한다. 새 국정 교과서에 대해 그는 "두드러지게 잘됐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역사 서술의 틀을 이 정도라도 정리했다면 성과로 평가하고 싶다. 적어도 우리 청소년들에게 우리나라 역사가 구질구질하고 혐오스럽다는 인식을 심어주지는 않을 것인 만큼 첫 단추로는 잘 꿰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했다.

"보편성과 일반성을 강조하다 보니 역사의 인과관계에 대한 서술이 약하고 역사교육의 목표인 교훈, 지혜, 미래 통찰 등 교육성이 다소 부족하다. 특히 한국은 세계 속에 존재해온 국가인데, 국제관계성에 대해서는 대단히 부족해 보완이 필요하다."

◆여성 독립운동가 조명, 대단히 잘한 일

지은이는 "이번 국정 교과서가 여성 독립운동가를 조명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다수의 숨은 여성 운동가들이 교과서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역사의 다양성을 높였다. 특히 교과서마다 친일파, 민족주의자로 다르게 평가되었던 인물에 대해 한 방향으로 깔끔하게 정리함으로써 헷갈리지 않도록 한 점도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특히 노동자, 농민만 중시하던 검인정 교과서의 편파적 시각에서 벗어나 근대화에 공로가 컸던 경제인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평가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했다. 검인정 교과서는 우리나라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기업가와 경제인이 보여주었던 노력을 도외시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평가와 교과서는 변하는 것

지은이는 "역사는 언제나 미완성의 불완전한 기록일 뿐이다. 한국사 교과서도 영구불변할 수는 없다. 현행 국정 교과서도 부족한 점이 많다. 시간을 두고 조금씩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국정을 넘어 검인정 교과서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은 없고, 오직 자신이 서 있는 발판을 때려 부수는 것을 큰 업적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건강한 보수의 정신은 계승되지 않았고, 가짜 진보가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우리나라 현대 사학계는 개혁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부를 게을리 해 역사학을 발전시키지 못한 죄, 학문을 이념 투쟁의 정치판으로 만든 죄, 학생들을 이념 투쟁의 도구로 만든 죄 등 지은 죄가 참으로 많다는 것이다. 검인정 교과서와 국정 교과서를 모두 검토한 박 교수는 이렇게 당부했다.

"후손들로부터 구질구질한 조상, 비루한 조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나라의 기백과 국가 정신을 회복하고, 비전이 있는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때려 부술 생각을 하지 말고, 더 나은 대한민국을 건설하자. 그렇게 하면 미흡한 대한민국은 자연스럽게 우리 곁에서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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