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문학상에 대한 단상(斷想)

겨울은 반성과 성찰의 계절이다.

찬란했던 봄과 여유로웠던 여름, 풍요의 가을이 지나고 한 해를 마무리 짓는 겨울은 지나온 한 해를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겨울을 예찬했다. 혹독한 겨울바람의 추위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지만, 감상적인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황폐한 계절을 견디는 나목(裸木)의 깨달음에 동조하여 새로운 생기를 되찾을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이 수여되자 문학계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찬반양론으로 갈린 주장이 술안주로 변신해서 요동쳤다. '문학 영역의 확장이다'와 '문학 장르에 대한 모욕이다'란 상반된 주장이 세계문학계의 화두였다. 국내에서도 대중음악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주는 것이 합당하냐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다. 아름다운 시가 노랫말이 될 수 있지만, 대중적인 음악을 위해 작사한 것이 모두 시는 아니라는 주장도 상당히 설득력을 얻었다.

그런데 문학상에 대한 시비는 비단 노벨상에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문학계에서도 오랜 시빗거리였다. 상금이 많고 적음에 따라서, 혹은 정치문인의 패거리 다툼의 결과물로 보고, 혹은 평소 행한 수상자의 처신에 영향을 받았다는 평가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학상이다. 내심 수상에 대한 기대심리가 높았던 탈락자의 하소연은 그들의 안타까움에는 동조하지만 본말을 벗어난 일탈의 심정도 갖는 것 같다.

대표적인 공모 문학상인 신춘문예도 때론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신인의 등용문인 신춘문예마저 문단을 장악한 문학 마피아의 놀이터라고 주장하는 문인들이 상당수다. 사실 예비심의 심사위원이 누구냐, 본심의 심사위원이 누구냐에 따라서 수상자가 달라질 수 있으니 그런 핑계가 생긴다고 볼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최우수 작품이 예심에 탈락이 되어도 아무도 그 작품이 어떤 수준의 작품인지 알 수 없다. 본심에 올라 최종심에서 심의된 작품에서 우열이 갈라져 탈락한 작품도 심사위원의 심사평 한마디에 고배를 마셔야 한다.

사실 장르와 상관없이, 발표된 문인의 작품을 평가하여 점수를 매기는 작업은 고통이다. 심사위원이 그 작품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곤란하기에 그렇고, 작품성 외적으로 일정한 기본적인 틀을 갖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심사위원의 지적인 수준과 통찰력의 결과가 반영되어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보통 문학상의 심사위원으로는 해당 장르에서 활동하는 문인과 비평가가 심사한다. 하지만 그들의 평가에 만족하지 못한 탈락자는 문학외적인 면이 심사에 반영되었음을 강조하며 비판하기 일쑤다. 그러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문학상이란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에 문학상에 대한 시비가 곳곳에서 난무한다.

지금은 봄과 여름, 가을이 지나고 눈이 내리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겨울이다. 가혹한 환경이다. 움츠러드는 계절이다. 밤이 길어진 어두움의 계절이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에 대한 반성과 움츠림에서 오는 새로운 깨달음으로 다가올 미래의 삶에 새로운 생기를 찾을 수 있는 기회의 계절이기도 하다.

문학인이 자신의 노작을 발표한다는 것은 그 작품을 태평양 한가운데로 던져버리는 것과 같다. 하기에 작품성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동료 문학인이나 비평가의 몫이 아니고 작품을 향유하면서 삶의 활기 찾기를 추구하는 독자의 몫이다. 문단 말석에 위치한 필자도 아름다운 이 계절에 자신만의 삶의 깊이와 통찰을 만개시킨 작품 쓰기에 몰입하는 미덕을 지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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