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패러디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부당하게 학점을 준 혐의로 구속된 류철균(필명 이인화) 교수가 30년 전에 쓴 소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는 문학계에서 큰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다. 대구 출신의 천재(라고 불린) 작가가 쓴 이 소설은 기존의 소설 작품에 있던 표현들을 부분부분 모아서 새로운 소설을 만든 것이었다. 이에 대해 짜깁기 소설, 표절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작가는 '혼성모방'이라는 새로운 창작 방법이라고 강변했다. 작가들은 어떤 멋진 말을 생각해 냈는데, 그 말을 이미 다른 사람이 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낭패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것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인류가 쌓아 놓은 무수한 말들이 있으니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조합하는 것이 새로운 작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혼성모방의 방법은 포스트모던 시대의 창작 방법으로 인정받기보다 창작에 대한 모독, 표절이라고 비난을 더 많이 받는다. 그런데 원작을 대놓고 베끼는데도 아무도 표절이라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표현 방법이 있는데 바로 '패러디'이다.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로 시작하는 장정일의 시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의 경우는 누가 봐도 김춘수의 시 '꽃'에서 가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패러디가 혼성모방과 다른 점은 원작을 분명히 의식할 수 있으며, 원작과의 비교에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패러디는 유명 영화의 한 장면, 유명인의 모습을 가볍고 익살스럽게 변형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예술의 영역에서 패러디는 장정일의 시처럼 원래 시를 차용하여 다른 문제를 제기하거나, 독일의 브레히트가 괴테의 시를 패러디한 것처럼 원래 작품이 가진 무거움을 조롱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원작과의 비교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패러디는 예술의 방법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지난주 표창원 의원이 국회에서 주최한 미술 전시회에서, 이구영 화가가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하여 박 대통령을 표현한 '더러운 잠'이라는 작품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누드화의 전통과는 거리가 먼, 현실적인 여인의 몸을 보여줌으로써 처음 발표되었을 때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알몸'이 아닌 예술적 표현 도구로서의 '몸'을 주목한 에밀 졸라의 비평에 힘입어 재조명되면서 예술 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중들은 원작의 맥락을 잘 모르기 때문에 '더러운 잠'은 작가의 의도를 구현해 내기 어려운 패러디였다. 대중들에게 이해되지 못하는 패러디는 가벼움으로 인해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논란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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