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게잡이 싹쓸이 선주는 해경간부

구룡포 통발어선으로 조업 방해…그물 가라앉혀 어민들에 피해

13일 오전 경북 동해안 항구. 중년의 한 남성이 기자 곁에 앉더니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를 꼭 지켜주신다는 전제 아래 말씀드리겠습니다. 동해안 홍게 조업 질서를 어지럽히는 나쁜 놈들이 바로 해경(해양경비안전서)입니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힘주어 다문 그에게 거듭 사실 여부를 확인했더니 "정말 억울합니다. 어민을 지켜야 하는 해경이 바다에서 홍게 조업을 하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제보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경북 동해안 해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홍게잡이 T어선(9.77t'연안통발)이 동해안 홍게 조업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해당 어선의 선장은 다른 어민들이 홍게를 잡기 위해 쳐놓은 통발그물 위에 자신들의 그물을 던지는 방식으로 홍게를 가로챘다. 제보자는 "어민들이 미리 쳐놓은 그물을 바다 아래로 가라앉힌 뒤 자신들이 홍게를 독식하는 식의 어로 행위를 일삼았다"고 했다.

많은 어민들이 이들의 수법에 걸려 어업 활동 손실은 물론이고 값비싼 그물을 잃어버리는 일을 수시로 당했다. 이처럼 바다로 사라져버린 그물 피해액은 알려진 것만 5천만원 이상에 달한다.

참다 못한 어민들이 T어선의 선장에게 항의했지만 도리어 겁박만 당하고 돌아왔다. 어민들은 T어선에 대해 수소문하던 중 엄청난 사실을 알고 충격에 휩싸였다. 선주가 바로 현직 해경 간부(경위)였던 것이다.

제보자는 "T호 선장은 대놓고 '내 뒤에 해경이 있다'고 말하고 다녔다"며 "해경에 잘못 보이면 온갖 트집을 잡아 더 큰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보니 어민들이 속울음을 참고 지금껏 견뎌왔다"고 했다.

또 다른 제보자는 "확인해 보니 정말 해경 간부였다. '선장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태도를 보이다가 '조업 구역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 조업이 왜 잘못됐느냐'는 선주의 말을 들은 어민도 있다"며 황당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포항 한 어민은 "해당 어선의 배경이 해경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간 꾹 참아왔다"며 "어민을 보호하고 어업 질서를 지켜야 할 해경이 직접 어선을 운영했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운데, 정상 조업을 하는 어민들을 괴롭히기까지 했다니 정말 이 나라에 법이 있는지 되묻고 싶다"고 한숨지었다.

한편, 해경 관계자는 "관련 사실을 확인하고 감찰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공무원 겸직 행위는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중징계 이상의 처분 대상이다.

포항 배형욱 기자 pea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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