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토기는 고아한 듯 투박하고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정교한 멋을 지니고 있다. 흙의 질감도 그대로 살아 있다. 신라토기 복원에 평생을 바쳐온 배용석(77) 명장은 토기를 예술적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신라 장인의 솜씨를 오롯이 되살려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경주시 하동 민속공예촌 내의 도자기 공방 보산토기를 운영하고 있는 배 명장은 오늘도 아버지가 물려준 물레를 발로 차면서 신라토기 복원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교사가 꿈이었으나 옹기장이로
경주 건천에서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배 명장의 어릴 적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제법 큰 옹기공장을 운영해 공부하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배 명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교사가 되기 위해 안동사범학교에 입학한다. 등록을 하고 입학식만을 기다리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한다. "캄캄했으나 아버지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면서 "장남으로서 어머님을 모셔야 하고 동생도 돌봐야 했다. 또 옹기공장도 운영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배 명장은 "단 하루도 학교에 다녀보지 못한 것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배 명장은 15세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와 아버지 뒤를 이어 옹기 가마의 주인이 됐다. "원하지도 않았던 도공의 길이었지만 그때부터 흙을 주무르고 가마에 불을 지펴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일하던 아저씨들도 처음에는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당시는 옹기 만드는 일도 기술이었거든요." 하루 종일 흙을 주무르다 보니 재미도 있었고 흥미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배 명장에게 아저씨들도 옹기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줬다. "여건이 좋아서 그런지 남들이 7, 8년 넘게 걸려 익히는 기술을 3년 만에 터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토기와의 인연도 운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신라토기 재현…그리고 명장
배 명장은 옹기 만드는 일을 배우자마자 장티푸스에 걸렸다. 병을 고치기 위해 여기저기를 다녔다. 어느 날 경주박물관을 찾았는데, 예술작품 같은 신라토기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만드는 옹기와는 달랐다. "그 당시에는 예술작품 같은 도자기는 거의 없었고 항아리와 소금단지, 밥'국 그릇 등을 만드는 옹기 굽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거든요. 쇠로 만든 줄 알았는데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흙으로 만들었다고 했어요."
그 후로 신라토기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에 매료됐다. 그러나 옛 조상의 지혜와 얼이 담긴 토기를 되살려 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배 명장은 박물관에서 알려준 대로 몇 번이고 토기를 만들어 구워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모양도 색깔도 아니었다.
배 명장이 찾아낸 실패의 원인은 '흙'이었다. 신라토기에 사용된 흙은 옹기 만드는 흙과는 달랐다. 고온에 잘 견디고 접착력이 강하고, 색깔이 잘 나오는 흙을 찾아 전국을 헤맸다. 주위에서 쓸데없는 일이라고 수군댔지만 배 명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10여 년을 헤맨 끝에 영천과 안강, 경주 내남면에서 원하던 흙을 찾았다. 세 군데 흙을 일정비율로 섞어 만드니 원하던 토기가 성형됐다. 그러나 불이 문제였다. 불의 성질을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신라토기는 오직 소나무로만 불을 지피고 서서히 열을 가해 1천300℃ 이상을 넘겨야 제대로 된 작품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소나무의 높은 열로 생긴 재들이 자연유약 역할을 해 검은 색깔로 변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드디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신라토기 제작에 성공했다. 배 명장이 만든 토기는 점토로 빚고 유약을 바르지 않은 채 초벌구이로 마무리한다는 점에서 다른 토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1천300도 고온에 구워 두들기면 둔탁한 소리 대신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그가 만든 신라토기는 용도에 따라 일상 생활용품인 장경호(목이 긴 항아리), 다리가 붙은 그릇 고배, 뿔 모양의 술잔 각배 등도 있고, 기마인물 토기 등 수십 종에 달한다. 흔들면 소리가 나는 잔도 있다. 국보 제91호인 기마인물형 토기는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주제로 제작된 신라시대의 토기이다. 이런 공로로 그는 1991년 대한민국 도자기 명장(토기 명장)에 선정됐다.
◆신라토기 특징
배 명장은 전동 물레가 아닌 전통 방식 그대로 발로 힘들게 물레를 돌려 토기를 빚는다. 그렇게 빚은 토기를 가마에 앉힌다. 가마는 1주일 정도 쉬지 않고 불을 때야 한다. 토기의 완성은 불 조절이 중요하다. 가마 구멍으로 불을 보며 온도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에 가마에 불을 지핀 1주일은 사뭇 긴장 속에서 보내야 한다. 불을 다 땐 뒤 가마의 모든 구멍을 꽉 막은 뒤 또다시 1주일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그 1주일의 시간 동안 토기는 가마 속의 재와 연기를 온몸으로 흠뻑 빨아들인다. 이후 가마의 재를 끄집어 낸 뒤 다시 구멍을 막고 가마가 온전히 식기를 기다려야 한다. 가마에 불을 붙인 지 20여 일, 고된 땀과 오랜 기다림을 고스란히 견디어 낸 후에야 비로소 신라토기는 그 모습을 드러낸다.
천 년의 역사와 신비를 간직한 신라토기의 색깔은 회청색이 주를 이룬다. 간혹 유약을 바른 것처럼 반들거리며 윤이 나는 것도 있다. 가마 속에서 구워 낼 때의 솔잎 재로 인하여 생긴 자연유가 덮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라토기는 생김새부터 가야나 다른 토기와 달리 날렵하면서도 가볍고 강도가 높다. 흙으로 만들었는데 살짝 두드려보니 뜻밖에도 쇳소리가 난다. 목항아리나 굽다리접시의 뚜껑에 동물이나 인물을 조그맣게 만들어 붙이는 것도 신라토기만의 특징이다. 배 명장은 "이런 노력을 다해도 10개 중 한두 개 정도만 건질 수 있다"고 했다.
◆신라토기, 후대에 잘 전해졌으면…
배 명장의 신라토기 사랑은 각별하다. "신라토기야말로 대단한 그릇이다. 요즘 웰빙을 위해 좋은 것만 찾는 사람들에게 신라토기는 딱 맞는 그릇"이라며 "신라토기에 물을 담아 놓으면 물맛이 좋아지고 음식을 담아 놔도 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배 명장은 그 이유에 대해 "흙과 불의 이로움 때문"이라고 했다.
배 명장의 토기 자랑은 끝이 없다. "원시적이지만 토기만큼 건강에 좋은 것이 없다"면서 "1천500년 전 씨앗과 동물 뼈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토기는 식품을 신선하게 오래도록 유지시켜 주는 훌륭한 생활용기"라고 말했다.
배 명장은 명장이 된 후 이화여대, 홍익대, 경주대 등에서 강의를 했지만 요즘은 모두 그만두고 아침 10시에 공방에 출근해 오후 3시까지 물레를 발로 차며 토기를 만든다. 그의 꿈은 신라토기 재현 과정과 기법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이론과 노하우를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전수할 사람이 없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길게 보지 않고 너무 빨리 미래를 판단해요. 그게 안타까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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